시민교육콘텐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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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콩나물시루]

[사람이 모이는 힘5]_ 자신과 마을을 ‘천천히’, ‘낯설게’ 보기

강정모 소장 2022. 7. 5. 11:33

광명시장애인보행인권영향평가 활동사진

이사를 가지 않고, 이사간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인테리어를 바꾸자니 돈이 많이 든다. 그러면 가구 및 가재도구 배치를 다르게 하면 된다. 쇼퍼, 책상, 침대, 식탁의 위치를 바꾸면 이용하는 나의 ‘시선’이 달라진다. 시선의 각도 변경은 같은 공간에 대해 낯선 인식을 주게 된다. 즉 익숙한 공간을 새롭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주민조직은 익숙한 지역을 다른 시선으로 관찰해내는 과정이 있어야 창조적 의제도출이 가능하다. 주민조직화 사업을 하다보면 10년이상 지역에 거주하신 분들이 오신다. 거기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다는 분도 있다. 산 만큼 지역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도 높다. 하지만 오래 살았다는 것이 곧 그 지역을 잘 아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래 살았어도 개인 일상을 살펴보면 집, 마트, 이미용실, 주민센터, 공원, 종교시설 등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동선(動線)이 형성되어 있다. 가끔 익숙한 동선보다 좀 돌아가더라도 다른 길로 가보면 낯설고, 신선한 느낌이 교차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상점, 공공 편의시설, 아름다운 거리, 유용한 장소, 불쾌하고, 어둡고, 아까운 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같은 장소를 다니더라도 시각과 관심을 바꾸면 같은 곳이 새롭게 다가온다. 나는 어느 지자체에 인권위원으로 잠시 활동한 적이 있다. 그 때 지하철역 주변과 동네 주변의 장애인보행인권영향평가에 참여했었다. 장애인보행인권영향평가에 참여하면서 내가 사는 지역을 늘 작은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나 그것은 지도차원의 관념적 지각이었음을 몸으로 체험하였다. 담당구역을 천.천.히.자.세.히. 걸어다녔다. 지도상 작은구역은 몸으로는 광활함으로 다가왔다. 익숙한 곳이었지만 살면서 대부분은 대중교통 또는 자차로 스쳐가며 이동하였지 그 구역을 그렇게 꾹꾹, 밀도있게 걸어다녀본건 당시 10여년간 살면서 처음이었음을 비로소 자각하였다. 내 자신의 관점에서 무의식적으로 다녔던 ‘익숙한’ 인도는 시각, 청각, 신체 장애인의 차원으로 전환하여 바라보니 한 걸음, 한 블럭마다 모두 낯설었고, 힘들었고, 분노와 한심함을 경험하게 되었다.

같은 공간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면 내 안에 일어나는 느낌부터 달라진다. 느낌은 사유(思惟)로 이어지며, 생각은 아이디어로 발전한다. 이 과정이 기획이다. 우리가 흔히 공무원들의 사업을 탁상공론(卓上空論)이라는 말로 비판과 비난을 하곤한다. 즉 현장을 모른다는 비아냥이다. 나도 그렇게 공무원들을 비판하던 사람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장애인인권영향평가와 주민조직현장에 크고 작은 활동에 참여하면서 공무원들에 대한 탁상공론이니, 현장을 모른다느니 하는 소위 ‘뒷담화’가 내 입에서 사라졌다. 왜냐하면 돌아다니지 않으면, 관점을 바꿔 질문하지 않으면 누구도 현장과 문제점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기초지자체에 인도, 교통, 장애인, 어린이, 안전, 여성, 노인 등의 이슈에 관련부서 또는 사업 공무원들은 많아 봤자 4~5명이다. 이들이 지자체를 돌아다니면서 현장을 탐색하고, 의제를 도출하고, 문제를 발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민관협력, 주민조직화, 지역복지가 요청된다. 

시각장애인용 교통신호기가 있다. 비장애인이 누르면 될까? 안 될까? 답은 된다. 장난만치지 않으면 눌러도 된다. 이 글을 보시는 비장애인분들은 오늘 신호등을 건널 때 보이는 시각장애인용 신호기를 한 번씩 눌러보시는 경험을 해보시면 좋겠다. 나도 가끔 신호대기중일 때 눌러본다. 아마 대부분은 나올 것이다. 그런데 아무 소리도 안 나오는 게 있다. 고장난 것이다. 고장났다고 화를 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고장이 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용 교통신호기는 외부에 설치된 기기다. 비, 바람, 먼지, 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에 고장이 발생하는건 자연스러운 것이다. 관건은 고장을 발견하고, 부서에 접수되어, 수리 또는 교체되는 과정이다. 담당공무원이 지자체를 돌아다니면서 일일히 고장난 기기를 조사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에 가깝다. 차라리 욕을 먹더라도 민원들어오면 고치는 과정을 감수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민조직화 사업이 지렛대가 될 수 있다. “**복지관장애인보행권동아리(가칭)”을 조직하여 구역을 나눠 시각장애인용 교통신호기만 한 달에 두 번 정도 누르고 다니는 것이다. 고장난 기기를 스마트폰으로 찍고, 위치와 기기번호를 조사하여 파일링하여 관련부서에 전달해주는 것이다. 담당공무원이 좋아할까? 싫어할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공무원이라면 잘 정리된 고장기기 목록을 주민조직이 자발적으로 정리해서 보내주었다. 어떤 감정이 올라올까? 내가 담당공무원이라면 감사하다는 말씀이 저절로 나올 듯 하다. 반면 자료를 바탕으로 고장 신호기가 교체되고, “**복지관장애인보행권동아리(가칭)”의 회원이 정상작동하는 그 지점 신호기를 확인했을 때 그 느낌은 어떨까? ‘공적쾌감(?)’ 여튼 뭔가 묘한 쾌감과 효능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주민조직화를 하는 ‘그 맛’은 천천히, 낯설게 공간을 돌아다닐수록 더 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