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교육콘텐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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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콩나물시루]

[사람이 모이는 힘4]_참여하는 주민들이 '대가'를 바랄 때

강정모 소장 2022. 6. 1. 23:42

주민조직화 사업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들은 성과를 얻기 위해 다양한 구성원의 자발성을 모아내야 한다. 여기서 강조점은 자발성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저서에서 이스라엘 어린이집 사례를 제시하였다.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들이 많아지자 벌금제도를 도입했다. 어린이집 원장은 부모들에게 벌금제도를 실시한다고 통보하였다. 부모는 당연히 벌금내지 않기 위해 아이를 빨리 데리러 오리라는 기대로 실시하였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의 수가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벌금제도는 실패하였다. 반면에 2002년 아일랜드 한 지역에서 마트에서 사용하는 비닐봉지에 소액세금 제도를 실시하였는데, 한 달만에 94%의 감소율의 성과를 내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어린이집은 지각 벌금제도는 왜 실패했고, 아일랜드 비닐봉지 소액세금 부과제도는 왜 성공했을까? 자발성의 관점에서 위의 사례에 대해 상상과 논리영역을 확장해보자.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 부모가 되어보자. 6시까지 아이를 찾아와야 하는데 6시반에 도착했다. 어린이집 문을 연다. 어떤 마음일까? 미안하고, 죄송한 느낌으로 다음부터는 일찍 찾으러 오겠다며 연신 사과하고 아이를 데리고 올 것이다. 그런데 아이를 데리고 집에가는 길에 어린이집 원장에게 문자를 받았다. 내일부터 30분 지각시 1만원씩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내용이다. 그저그런 마음으로 묻어두었다. 그런데 다음날 오후 5시에 갑자기 처리해야할 일이 생겼다. 급하게 처리하다보니 아무래도 6시까지 아이를 찾으러가지 못할 듯 했다. 마음이 급하고, 초조했다. 그러다 어제 받은 문자가 생각났다. 원장님이 보낸 30분 늦을 때마다 1만원씩 벌금 문자를 확인했다. 그런데 문자로 인해 왠지 마음이 더 편해지는 것 아닌가? 처리해야할 일과 아이를 데려오는 일 사이에서 대처 전략이 몽실몽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금하는 일을 실수없이, 집중하여 처리하고, 찾으러 가는 길에 현금 2만원을 뽑는다. 7시에 어린이집 문을 열었다. 어떤 느낌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제처럼 미안하고, 죄송한 느낌은 아니다. 아이를 찾고, 2만원을 내면서 수고하셨습니다~ 인사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즉 '벌금'이라 말했지만 나에게는 추가 돌봄서비스 ‘비용’이 된 것이다. 

아일랜드의 한 지역에서는 ‘한 달 뒤에’ 비닐봉투를 무료로 주지 않고, 소액세금을 부과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 달 동안’ 행정시스템을 통해 꾸준히 환경교육과 비닐봉투가 우리에게 어떤 해로운 영향을 미치고, 지역사회에 어떤 어려움을 주는지 주민교육을 실시하였다. 즉 주민에게 소액세금 부과제도를 실시하는 ‘이유’를 설명하였던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이 부모들에게 문자로 벌금제도를 통보하지 않고, 한 두 달 동안 만나는 부모들에게 아이를 늦게 찾을 때 어린이집 교사들이 어떤 고충을 겪는지 이야기하고, 부득이하게 벌금제도를 실시하는 이유를 설명했다면 실패 가능성은 낮아졌을 것이다. 즉 참여자들이 정책의 이유를 모르니 제도의 목적이 바뀌게 된 것이다.

사회복지사가 사업의 목적을 참여주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하고, 명료화하는 것은 번거로운 과정이다. 하지만 이유를 설명하는 번거로움은 자발성을 성장하게 하는 거름이 된다. 사람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동력이 필요하다. 동력은 첫째 움직이는 이유를 알고, 납득할 때 두번째는 대가다. 그렇다면 참여주민들이 점점 무언가 다양한 대가를 요구하는 태도를 나타낸다는 것은, 사업참여 ‘이유’의 동력이 고갈되었음을 진단하고, 참여자들에게 이유를 이해하고, 고찰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자발성을 활성화시키는 두번째 요소는 ‘선택’이다. 국민과 시민의 차이는 무엇인가? 국가에 살면 국민, 지역에 살면 시민인가? 틀린 얘기는 아니다. 다른 관점에서도 생각해보자.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대한민국을 선택한 분이 계신가? 당혹스런 질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차려보니 대한민국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립이후 지금까지 삶을 반추해보자. 진학을 할까? 직장에 갈까? 이 사람을 만날까? 저 사람을 만날까? 사귈까 말까? 헤어질까 말까? 결혼할까 말까? 아이는 낳을까 말까? 몇 명을 낳을까? 집을 살까 말까? 여기 살까? 저기 살까? 지금까지 무엇의 연속이셨는가? 그렇다 ‘선택’의 연속이었다. 선택하기 전날 밤을 떠올려보자. 선택의 기로에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에 따라 그에 따른 결과는 온전히 내 책임이다. 잠이 올리 없었을 것이다. 즉 국민은 태어나지만 시민은 내가 내린 선택으로 내가 만드는 존재라고 해석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지금까지 내가 내린 선택의 산물이다. 

즉 시민은 선택과 책임으로 구성된 존재다. 미래의 내 삶도 선택의 연속이며,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은 스스로 내린 선택의 지점에만 온전히 책임지려는 경향을 갖고, 보너스로 삶의 재미와 의미도 수반된다.  

주민조직의 제일 원동력은 자발성이다. 자발성은 참여하는 주민들이 주민조직과 조직이 하는 사업의 ‘이유’를 알고, 스스로 ‘선택’을 할 때 피어나는 성과다. 이유를 설명하는 번거로움을 재미있게 기획하고,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는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능숙하게 다루는 역량은 사회복지로 재구성되는 대한민국이 요청하는 인재상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