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교육콘텐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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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콩나물시루]

[사람이 모이는 힘3]_조직은 ‘목표지’가 아니라 ‘목적지’가 있어야 출발한다

강정모 소장 2022. 5. 14. 19:46

나는 17년차 교육활동가이자 강사다. 기본 2시간에서 길게는 6시간까지 참여자들 앞에 서서 교육활동을 한다. 30대에는 단체활동과 강사를 병행하느라 몰랐으나, 40대부터 강의를 전업으로 하다보니 강의량이 많아졌다. 나이가 들면서 직업병이 생기기 시작했다. 차츰 앉았다 일어나면 하반신이 불편해졌다. 운동부족이려니 해서 드문드문 운동을 했다. 하지만 허리, 무릎의 통증은 심해졌다. 4년전 가족과 교외로 나들이를 하다가 점심식사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손을 씻기 위해 세면대에서 허리를 숙이는데 전신에 백만볼트 전기에 감전되는 듯한 충격을 받고,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 몸이 떨리면서 일어설수 없었다. 허리디스크가 터졌다. 무릎으로 화장실을 기어나왔다. 가족들은 기어나오는 나를 보고, 어리둥절해 했다. 나를 부축하라고 소리지를 힘도 없었다. 

지독한 허리통증은 한 달 정도 되자 가라앉았다. 이렇게 낫는구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하반신 뒤편(햄스트링)이 찢어질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서 있는 자체가 고통이었다. 우울한 일상을 보냈다. 지역의 인권위원이었던 나는 마을의 장애인 보행권 조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해당 구역을 걸어다니면서 인도상태, 시각장애인용 신호기, 경사로 등을 조사하였다. 백미터 마다 쉬면서 겨우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데, 한 동료 인권위원께서 왜 이리 힘들어하냐고 물었다. 허리디스크로 고생중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자신도 십여년을 고생했다고 하면서 치료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한의원 등을 전전하고 있다고 했더니,  자신은 물속걷기와 수영으로 완치했다고 하며, 수영을 권유하였다. 그 분은 소아마비  장애를 갖고 계신분이라서 조언에 권위를 느꼈다. 

나는 당장 수영을 시작했고, 수영을 할 수 없는 날에는 목욕탕에서 물속걷기를 했다. 이주일만에 효과를 보기 시작했고, 한달 뒤에는 통증이 사라졌다. 세상이 달라보였다. 그 뒤로 수영이 습관이 되었고, 수영도 늘었다. 차츰 수영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50~60대 경력자의 유려한 접영이 부러워졌고, 옆 레인에서 수영하는 사람과 경쟁하기 시작했다. 같이 출발하는 사람보다 먼저 도착하면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접영을 배우기 위해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고, 멋진 포즈로 수영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수영을 마치고 샤워를 하다 거울을 보며 부끄러워졌다. 허리디스크 치료를 목적으로 수영하던 내가 뭐하고 있는 것인가? 교육활동을 위해 건강해야 했고, 허리디스크를 치료해야 했고, 그래서 수영을 하고 있지 않은가? 수영을 잘 하기 위해 수영을 하고 있는게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현타(?)를 맞고서 나는 다시 허리치료를 위해 입을 벌린 자세로, 물속을 걷고, 기립근력 향상을 위한 테라피 모드로 돌아갔다. 물 에너지를 충분히 흡입하고서 좋은 컨디션으로 교육참여자들에게 질높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민조직화 사업은 수단이다. 마을과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주민조직화 사업을 하는 것이다. 주민조직화를 하다보면 사업의 이해관계자들은 목적을 잊고, 주민조직화 사업 자체가 목적이 되기 시작한다. 그 시점부터 이해관계자 그룹내에 갈등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주민조직화 사업은 사업마다 목적이 있다. 목적은 사업이 구체화될수록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잊혀지기 시작한다. 노숙인을 위한 급식사업을 오래도록 했으나, 한 명도 자활하지 않았다면, 작은도서관에서 독서 프로그램을 했으나, 마을주민들의 작은도서관 이용율이 향상되지 않았다면,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에게 한글문해교육 프로그램을 했으나, 통합 어린이 프로그램에 자발적으로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사업은 잘 했을지는 모르나 이 사업을 통해 무엇을 변화시켰는가라는 회의(懷疑)에 빠지게 된다. 회의는 소진(燒盡)으로 이어진다.

주민조직화 사업의 목적은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과 같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가만히 두면 ‘미지근하게’ 되듯이, 처음의 온도를 유지하려면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즉 주민조직화 사업을 둘러싼 사업목적의 명료성을 유지해야 한다. 노숙인의 자활을 위해 급식뿐만 아니라, 인문학 교육, 마을네트워크, 일자리 조사, 직업능력 개발 등과 연결시켜야 한다. 작은 도서관 이용율 향상을 위해 독서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마을활동가, 지역자원봉사자들을 연계하고, 마을공동체, 주민자치회의 문화사업을 공동운영 하며, 평생학습 동아리들과 네트워크해야 한다. 주민조직화 사업의 창조적 기획은 목적을 명료화하는데서 도출된다. 똑같은 사업을 하고 있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은가? 사업목적을 소환하자.  

사회복지사들은 주민조직의 구심력 확보를 위해 주민들의 갈등관리와 의사소통 역량향상이라는 처방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갈등이해와 의사소통 역량은 중요하지만 하지만 그보다 주요한 주민조직 동력의 저하 원인은 주민들이 사업에 참여하는 이유가 불분명하거나, 주민마다 다른 목적으로 참여한 것에 기인한다. 목적의 명료화는 주민조직화 사업의 토대며, 주민조직화의 시작이다. 길 가다 보면 어둠도 오는데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는 등불도 목적이다. 주민조직화 사업은 사회복지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하는 것이다. 주민들이 사업의 목적을 잃지 않도록 목적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주는 자가 사회복지사의 역할이다. 

오늘도 옆 트랙에서 멋진 영법으로 나보다 빠른 수영하는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속도내는 나, 정신차리자! 나는 허리를 치유하기 위해 수영을 한다. 좋은 컨디션으로 교육을 하고자 수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