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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콩나물시루]

[사람이 모이는 힘6]_함께 요리하기

강정모 소장 2022. 7. 24. 10:19

오페라와 마당놀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오페라는 관객과 소통이 불가하다, 짜여진 대본 그대로 전달해야 하며, 무대와 객석의 간격이 멀다, 특정한 장소와 특별한 시설이 필요하고, 관객 좌석의 위치에 따라 가격의 차이가 있다, 다소 경직된 관객의 참여매너가 요청되고, 형식과 격식이 요청된다, 관객은 왠지 관람하러갈때 복장을 갖춰 입어야 할 듯 하다. 

반면에 마당놀이는 관객과 소통이 가능하고, 관객과 소통하면서 함께 내용을 만들어나가기도 하고, 객석과 무대의 간격이 없고, 특별한 장소와 시설이 요청되지 않는다, 객석도 지정되지 않아 먼저 오면 앞에 앉을 수 있고, 공연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중간에 돌아다녀도 괜찮다, 형식과 격식이 자유로우며, 따라서 관객의 옷차림도 잠옷만 아니라면 눈치볼게 없다. 

상상해보자~ 오페라 공연이 상연되고 있다. 배우가 아리아를 멋지게 부르고 있다. 객석에 앉아있던 한 관객이 황홀경에 빠졌다.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 앉은 사람들이 힐끔힐끔 눈치를 본다. 그런데 그 사람이 무대로 향해 나가더니 무대에 올라가서 배우 옆에 서서 눈물을 흘린다. 이런 상황을 뭐라고 이름붙일까? 그렇다. 사고다. 황당한 사고... 이번에는 마당놀이가 펼쳐지고 있다. 배우들이 둘러앉은 관객들에게 노래도, 이야기도 하자하는데, 반응이 없다. 반은 졸고 있다. 몇몇은 전화를 하고 있다. 무슨 정황일까? 그렇다. 이번에도 사고다. 당혹스런 사고... 둘 다 사고인데 오페라의 사고와 마당놀이의 사고 형태가 완전히 다르다. 

<건강한 조직, 2017, 지식과감성>에서 이재현은 오페라와 마당놀이를 비유로 사회복지 주민조직 프로그램 운영의 변화지점을 제안하였다. 그 일부 내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오페라가 펼쳐지는 무대에 누군가 올라간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방송사고가 되겠죠? 완벽한 쇼에 참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완벽한 것을 마주하는 사람은 이제 팔짱을 끼고 앉아서는 관객이 되어 그 쇼를 평가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생각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러나 마당놀이는 어떤가요? 무언가 빈틈이 있고 편한 느낌이죠? 흥에 겨우면 누군가가 무대에 들어가 함께 춤을 춰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렇듯, 약간의 빈틈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참여할 공간을 발견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지역주민들에게 자발성을 요구하기 전에, 그들이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먼저 제공해 보세요. 행사 프로그램을 홍보한 후 참여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 프로그램의 기획부터 함께 만들어가도록 노력해 보세요. 이런 작은 변화가 지속된다면 주민들의 자발성은 서서히 되살아나기 시작할 겁니다


지금까지 국정, 시정, 구정, 군정, 조직운영, 교육운영, 프로그램 운영방식은 오페라적 운영이었다. 참여자와 떨어진 별도의 무대에서 완벽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습득하여, 전문가들이 일방적으로 펼치면, 참여자들은 보기만 했다. 참여자중에 자기도 할 수 있다는 표현을 하면, 주변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압력을 넣는 분위기였다. 오페라적 상황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국정, 시정, 구정, 군정, 조직운영, 교육운영, 프로그램 운영방식은 마당놀이적 방식이 지향될 것이다. 완벽하게 준비하되 이재현의 제안처럼 ‘빈틈’의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빈틈의 장치를 넣어 주민들이 참여하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넣어, 기획부터 함께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복지사들이 전문성을 발휘하여 차림상 레시피를 고민하고, 완벽하게 설계하여, 정성껏 요리하고, 주민들, 자원봉사자들, 사회복지 서비스 이용자들을 모아 정성스런 식탁을 제공해왔다. 참여한 서비스 이용자, 주민, 자원봉사자들은 숟가락을 들고, 먹기만 했다. 어떨땐 사회복지사들이 숟가락까지 들어 떠 먹이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방식의 주민조직 프로그램의 가치평가를 하자는게 아니다. 계속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더해 사회복지사, 주민들, 자원봉사자들, 이용자들이 빈 식탁에 둘어앉을 필요도 있다. 사회복지사는 이들에게 무언가 제공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내려놓아도 된다. 대신 질문을 준비한다. “이번에는 어떤 요리를 할까요?”, “그 중에서 지금은 어떤 요리가 시절에 맞을까요?”, “다른 분들도 더 초대한다면 메인 요리말고, 더 준비해야할 것은 무엇인가요?”, “준비된 예산은 ~~정도 인데 식탁을 차리려면 어떻게 재료를 준비해야할까요?”, “부족한 예산은 어떤 방식으로 조정할 수 있을까요?”, “이제 식탁을 차리려면 누가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요?” 등의 적합한 질문으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할 공간을 형성하여 의견을 담고, 조정한다. 

사회복지사는 팀리더이자, 팀원이 된다. 만든 식탁은 전문가의 완벽한 요리보다는 못할 수 있으나 더 맛있게 먹는다. 우리가 만든 요리이기 때문이다. 불만도 덜하다. 우리가 만든 요리이기 때문이다. 점점 팀워크가 만들어진다. 갈등도 있었지만, 재미도 있고, 우정도 쌓인다. 주민, 사회복지사, 이용자, 자원봉사자들은 각각의 세계를 서로와 공유한다. 이용자와 주민들은 제공받아왔던 사회복지 서비스들이 얼마나 많은 노고와 정성이 담겨있던 것인지에 대해 피부로 공감해간다. 주민조직의 구심력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성장사회에서 성숙사회로 이행되어가고 있다. 30점짜리 사회는 50여년간 죽어라 노력하여 90점짜리가 되었다. 영리든 공공이든, 비영리든 성과 그래프는 대체로 우상향의 시대를 걸어왔다. 하지만 이제 90점짜리의 시대에 접어든 대한민국은 90점을 유지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성장은 멈추고, 성숙이 요청되는 시대다. 성숙은 시행착오를 성과로 축적하는 역량이다. 사회복지사는 주민, 자원봉사자, 이용자들이 사회복지의제를 함께 만들고, 풀고, 설계하고, 건설하는 민주적 리더십이 요청된다. 성숙사회에 진입한 대한민국 사회복지사들의 전문성을 재정의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