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조직을 시작할 때 첫 단추는 소개하기다. 질 높은 소개하기는 주민조직에 영양을 넣어준다. 코로나19가 완화되어 현장 교육과 활동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참석한다. 소개하기의 핵심은 인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스크로 인해 얼굴 파악이 어렵다. 그래서 참여자들에게 A4용지를 나눠주고, 마스크 벗은 이목구비가 모두 있는 자신의 자화상을 크게 그려달라고 요청한다. 그 밑에 자신의 이름과 사는동네(洞)를 기재하고, “나를 설레게 하는 1가지”를 작성하도록 당부한다. 예를 들면 나는 ‘붉은노을’이다. 저녁 남색 하늘과 붉은 노을이 겹쳐진 장면을 보고있으면 사라져버려도 좋을 것 같은 설렘과 묘한 호르몬이 돈다. 나의 사례를 들며 참여자들에게 작성해달라고 요청한다. 이 말씀을 드리지 않으면 대개 우정, 사랑, 행복, 성실, 나눔, 사회복지 등 하나마나한 단어를 작성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을 고려하여 “년말까지 달성하고 싶은 목표 1가지”를 작성하게 한다. 예를 들면 나는 허리디스크가 있어서 수영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래서 쉬지 않고 400m를 가는 것이 년말까지 달성하고 싶은 목표다. 이렇게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지 않으면 참여자들은 ‘다이어트, 운동하기 등’ 역시 그저그런 말을 작성할 뿐이다. 작성을 시작하면 그림그리기가 어렵다는 둥, 설레이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 둥, 미적거린다. 하지만 2분이상 시간을 주면 대개 다들 작성해낸다. 누군가가 의외로 얼굴을 잘 그리면, 특유의 경쟁심이 발동하여, 휴대폰의 자신의 사진을 띄워놓고, 집중하기 시작한다. 모두 작성하였으면 진행자부터 작성한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이 때 주의사항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얼굴을 그린 이유는 자기 보라고 그린 것이 아니라, 상대방 보라고 그렸음을 환기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술시간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너무 못 그렸다는 말을 되뇌이며, 상대방에게 보여주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보여주면서 소개할 것을 강조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를 설레이게 하는 것, 그 이유, 년말까지 달성하고 싶은 것과 그 이유”만을 소개해달라고 당부한다. 이런 당부를 하지 않으면 너무 짧게 소개하거나 아니면 단어를 소재로 하여, 자신의 30년간의 인생 여정을 눈치없이 이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처음에는 낯섦으로 인해 소개가 뻑뻑하지만 점점 부드러워지고, 웃음과 미소, 친근함의 기운들이 영글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때 강정모입니다~~~라고 흘려서 발음하지 않도록 하면 더 좋다. 빨리 발음하게 되면 상대방은 알아듣지 못한다. ‘강! 정! 모!’입니다. 라고 한 글자 마다 스타카토와 느낌표를 섞어서 발음해달라고 당부하고, 시범을 보여주면 더 좋다.
이러한 질높은 소개하기를 위해 품을 들이지 않을수록 주민모임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점점 논리로만 가득하게 된다. 논리로만 가득하게 된다는 것은 안건의 목적과 목표에 대한 논의보다는 내 주장이 맞고, 옳다는 목적없는 논쟁만으로 회의가 채워진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회복지사분들은 사업이든, 사적이든 소개하기를 여러 번 경험했을 것이다. 대개 돌아가면서 소개한다. 이름, 기관 더 있다면 부서와 직책 정도가 소개의 주요내용이다. 모두 소개하고 박수를 칠지, 소개할 때마다 박수를 쳐야 할지 정해주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박수를 치다가 인원이 10명 이상 되면 점점 박수도 흐릿해진다. 자~ 소개가 끝났다. 옆 사람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거의 없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옆 사람은 더 기억이 안 난다. 왜냐하면 옆 사람이 소개할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점점 다가오는 소개 순서에 맘이 떨리다가 옆 사람이 소개할 때는 내 소개할 내용을 생각하느라 옆 사람 소개가 언제 끝나는지도 모를 수 있다. 지금까지 주민모임에서도 의미없는 소개를 해왔다.
위에서 제시한 방법을 써보자. 옆 사람 소개할 때 내 소개 꺼리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미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여자들은 처음 만난 사람들의 직업, 성과, 하는 일에 궁금할까? 아니다. 별로 궁금하지 않다. 하지만 설레이는 것, 힘들었던 것, 성취하고 싶은 것, 소중한 것은 공감이 가능하다. 상대방의 설레임, 힘듦, 성취하고 싶은 것, 소중한 것들을 듣다보면 나도 그렇게 하고 싶거나 그럴 때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관계형성과 사회적 자본은 더 많이 쌓을 수 있다. 이름을 명료하게 전달하면서 선명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이렇게 의미있고, 재미있고, 효과적인 소개하기는 주민조직의 첫 단추다. 소개를 불명료하면 시작이 부실하게 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구성원들의 삶을 담아내는 소개하기는 민주주의 활성화의 기술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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