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과 마주 앉아 회의를 시작하자
강정모 소장
군인정신과 주인정신은 다르다. 특히 ‘양보와 타협’에서 군인정신과 주민정신의 차이는 무엇일까? 군인은 상대와 ‘양보와 타협’을 하면 패배감 심지어 굴욕감에 사무치게 된다. 주민들은 다른 주민과 양보와 타협했을 때 군인과는 달리 ‘성과’ 일 것이다. 주민조직에 참여하는 주민들의 대부분은 지역과 마을의 변화에 대한 시민성에 기반하여 참여한다. 하지만 가끔 주민모임에 ‘군인정신’으로 무장하여 참여하시는 분이 계신다. 주민조직화 사업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는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주민’ 한 두 분으로 인해 주민조직사업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회의를 시작할 때 “군인은 적과 양보와 타협을 하면 굴욕감이 들겠지만, 주민들은 동료와 양보와 타협하면 그것이 바로 사업의 성과입니다” 라는 ‘멘트’를 깔고 회의를 시작하시길 제안드린다. 그러면 혹시 어떤 주민이 모임에 ‘군인정신’으로 무장하고 왔다고 해도, 사회복지사의 ‘멘트’를 듣고, 태도를 전환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주민조직사업이라는 항해를 위한 ‘여행자 보험’ 들 듯이...
주민모임에서 자기소개와 관계형성을 마치게 되면, 담당 사회복지사는 주민조직 사업이 다 끝난 듯한 안도감이 든다. 하지만 그건 배를 만들었을 뿐이다. 항해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어디로 갈 건지, 어떻게 갈 건지, 세부적으로 역할을 어떻게 나눌 건지 이제 논의를 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를 팀원들과 하는 게 아니라 모인 주민들과 해야 한다. 오랫동안 함께 근무하고 있는 동료들과 사업논의를 하는 것도 힘든데, 주민들과 논의를 해야 한다. 그래서 주민조직사업을 운영하다 보면 그냥 내가 해버리고자 하는 유혹이 든다. 그러다 유혹에 넘어가면 주민들은 곧 ‘이용자’가 되고, ‘관객’이 된다. 자~ 지금까지 해왔던 사업수행과는 다른 낯선 방식을 향한 용기를 내자.
관계가 형성된 주민들과 마주 앉아 무엇을 말해야 할까? 이야기할 내용이 없는가? 머리가 하얗게 되는가? 할 얘기가 없어도 된다. 주민조직은 여러분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이야기하게끔 하는 사업이다.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면 도구가 필요하다. “우리 마을에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우리 마을에 시급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 사안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까요?” 바로 질문이다. 특히 육하원칙이 ‘앙꼬’로 들어간 질문이 주민과 회의를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촉진할 것이다.
조직내에서 ‘회의’를 하다 보면 ‘회의감’이 든다. 그래서 나는 문득 한글에서 회의에 한자를 눌러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회의(會議)와 ‘회의감이 든다’할 때 회의(懷疑)뿐만 아니라 회의(會意)와 회의(回議)라는 한자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회의(會意)는 ‘①뜻을 알아챔 ②마음에 맞음’이라는 의미였고, 회의(回議)는 ‘주관자가 기안한 기안을 관계자들에게 돌려서 의견을 묻거나 동의를 구하는 일’이라는 뜻이었다. 유레카! 회의(會議)는 회의(懷疑), 회의(會意), 회의(回議)가 결합되어야 온전한 회의가 되겠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이러한 사전적 의미를 바탕으로 ‘온전한’ 회의를 재구성해 보면 아래와 같다.
1단계 회의: 會議
_모여서, 소개하고(누가), 주제정하고(무엇), 규칙 정하기(어떻게)
2단계 회의: 懷疑
_주제에 대해 의심하고, 비판하고, 논쟁과 설득하는 토론(討論)하기
3단계 회의: 會意
_토론(討論)을 통해 찬성과 반대입장에 대한 내용을 명확히 파악한다. (뜻을 깨닫고)_타협 및 절충과 양보를 하여, 민주적 방법을 통해 선택한다.
_채택된 쪽은 감사하고, 채택되지 않은 쪽은 승복하고, 결정에 따른다.(마음에 맞음)
4단계 회의: 回議
_선택한 입장에 대해 마음을 모은 구성원들은 ‘돌아가며 대안에 대해 토의(討議)한다._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돌아가며’ 의견을 구한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까지 1단계 회의인 ‘會議’의 주변만 맴돌았을 수 있다. 각각의 직급과 직책의 갑옷을 두르고, 지시와 이행 위주의 회의를 회의의 전부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래서 회의가 불편하고, 지루하고, 회의적이었을 수 있다. 주민조직 사업은 담당 사회복지사를 포함해 모인 주민 모두가 한 수평적인 한 팀이 되어, 지시와 이행이 아닌 ‘도출과 선택 그리고 계획, 실천, 평가’를 하기 위한 온전한 회의, 민주적 회의가 요청된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운영을 위한 방법이 있다. 이것을 ‘민주적 회의방법’이라고 한다. 민주적 회의가 아닌 ‘권위적 회의’는 특별한 방법이 요청되지 않는다. 자료와 발표, 지시와 이행 정도가 있을 뿐이다. 권위적 회의는 지루하지만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즉 효율적이다. 하지만 ‘뒷담화’가 수반된다. 하지만 민주적 회의는 피곤하고, 의사결정이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결정된 내용은 권위자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피곤하고, 비효율적이므로 오래 하려면 ‘방법과 역량’이 필요하다. 이것을 ‘퍼실리테이션’이라고도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정답’이 없는 사회를 살고 있다. ‘정답’이 있는 사회는 ‘권위적 사회’다. 어제의 정답이 오늘은 정답이 아닌 사회의 임의성과 유동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제는 정답이 아니라 ‘모인 사람들안에서 수긍하는 답’이 존재할 뿐이다. 수긍하는 답이 축적되면 지혜와 노하우로 익는다. 정답이 있었던 과거 사회복지는 정답을 만들어 이용자에게 드리면 되었다. 하지만 정답이 없는 오늘날 사회복지는 불편과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모색하는 모임을 만들어야 한다. 즉 주민들은 우리 기관 사회복지 서비스의 ‘이용자’이자 ‘파트너’로 바라봐야 한다. 주민을 사업의 동료로 만나는 길은 주민들과 하는 ‘회의’의 여정 속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지금부터 시리즈로 주민들과 함께하는 회의의 여정을 떠나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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