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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칼럼[콩나물시루]

배움이 권력이 되는 도시: 평생학습도시 광명시의 '시민주권'의 실질적 진화

강정모 소장 2022. 11. 20. 10:18

 

선진국의 위상과 사회적 자본의 요청

광명시는 1999년 전국 최초로 평생학습도시를 선언한 이래, 장애인 평생학습도시 선언을 거쳐 현재의 평생학습원으로 확장하며 끊임없이 진화해 왔습니다. 전국의 평생학습 종사자들에게 모범 사례이자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 잡은 광명시는 이제 대한민국이 직면한 시대적 과제에 '평생학습'이라는 도구로 응답해야 할 때를 맞이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입니다. 1964년 설립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가입국을 경제 발전 단계에 따라 4개 그룹으로 구분하는데, 2021년 7월 대한민국은 설립 57년 만에 그룹 A(아시아·아프리카)에서 그룹 B(선진국)로 격상된 최초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인구 5천만 명 이상, 1인당 국민총생산(GNP) 3만 달러 이상인 '30-50 클럽'에 합류하며 G7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입니다. 김구 선생이 1943년 ‘나의 소원’에서 간절히 염원했던 ‘높은 문화의 힘’ 또한 오늘날 전 세계가 열광하는 ‘K-콘텐츠’를 통해 충분히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선진국은 단순히 부유한 나라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원 부국이나 경제적 자본만 풍부한 국가를 훌륭한 나라라고 칭송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품격 있는 국가는 '자본'과 '사회적 자본'이 균형 있게 어우러진 공동체입니다.

 

사회적 자본의 원천, 풀뿌리 민주주의

영국 레가툼 연구소는 사회적 자본을 측정하는 지표로 다섯 가지 항목을 제시합니다. 곤경에 처했을 때 유대감을 나누는 개인과 가족, 존중과 배려가 흐르는 사회적 네트워크, 낯선 이와 소수자에 대한 타인 신뢰, 공적 시스템에 대한 기관 신뢰, 그리고 기부와 투표, 정책 제안을 포함하는 시민 참여가 그것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풍성할 때 비로소 그 공동체는 행복하고 신뢰받는 지속 가능한 터전이 됩니다. 주목할 점은 사회적 자본이 권력을 가진 지도자의 일방적인 주도나 단결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사회적 자본은 오직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산을 통해서만 창출될 수 있습니다. 실질적인 자치와 분권 시스템이 작동하고, 이를 운영하는 시민들의 역량과 민주적 문화가 뿌리내리지 않는다면 사회적 자본이 성장할 길은 요원합니다.

 

광명시 민주시민교육의 시스템적 진화

광명시는 사회적 자본을 형성할 역량과 문화를 확산시킬 '평생학습원'이라는 비옥한 토양을 이미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성과를 기반으로, 이제는 '민주주의와 자치력'을 배양하기 위한 교육 인프라와 콘텐츠가 싹을 틔우고 열매 맺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현재 운영 중인 '광명시 민주시민교육센터'는 시범 운영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진화를 거쳐야 합니다. 명칭이 민주시민교육센터이든, 정치교육원이나 공익활동지원센터이든 논의의 여지는 열려 있으나, 핵심은 '일몰성 프로젝트' 수준을 벗어나 가시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습니다. 관념적인 슬로건으로서의 자치분권이 아니라, 시민에게 실질적인 예산 운영 권한을 배분하고 참여하는 시민들의 자치력과 책임감을 고양하며, 역량 있는 시민을 발굴해 실질적인 시민주권의 결실을 맺는 도전에 나서야 합니다.

 

시행착오를 통한 창조, 실천하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는 학술적으로 다양하게 구분되지만, 근본적으로는 독재(권위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공동체가 어느 지점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은 헌법을 통해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며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많은 국가가 효율성과 속도를 이유로, 혹은 개인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독재적 방식을 지지하기도 하지만, 민주주의는 그 '느림'과 '피로함' 속에 결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독재는 시행착오를 허용하지 않으며 수정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수정할 수 없는 사회에서는 창조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공동체의 창조적 자산은 오직 시행착오를 수용하고 현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민주적 문화 위에서만 꽃필 수 있습니다.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부담스러운 짐으로 느끼지 않게 하려면 일상에서의 '민주적 역량 강화'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민주적 역량은 민주주의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민주적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이를 활용하는 실천적 기술을 의미합니다. 영어를 배우는 것과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것이 다르듯, 민주주의 또한 이론 교육을 넘어 실제적인 '연습'이 필요합니다. 시민들이 그 연습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고 효능감을 경험할 수 있도록, 실생활에 이익이 되고 직접 활용 가능한 민주주의를 개발하는 공적 토대가 절실합니다.

 

축적된 성과와 미래를 향한 비전

현재 광명시 민주시민교육센터는 물리적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완벽히 결합한 상태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여간 광명YMCA가 위탁 운영하며 민주시민교육 16차시, 시민정치교육 8차시 과정을 개발하는 등 탁월한 성과를 축적해 왔습니다. 시민들이 일상에서 쉽고 흥미롭게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콘텐츠를 쌓았으며, 이를 전파할 촉진자와 강사 양성을 위한 교육 교안까지 체계화했습니다. 이 콘텐츠들은 상아탑의 이론적 결과물이 아니라, 광명시 시민사회와 정치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시민들의 생생한 지혜로 짜여졌습니다. '나, 너, 우리'라는 맥락에서 통합적 민주 가치를 내재화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것은 전국적으로도 선도적인 사례입니다. 이제 광명시의 과제는 이 소프트웨어가 일상에서 구동될 수 있도록 예산, 공간, 인력을 갖춘 '하드웨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많은 지자체가 공간을 먼저 만들고 콘텐츠 부재로 활력을 잃는 것과 달리, 광명시는 이미 풍성한 운영 노하우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센터가 체계화된다면 주민자치, 자원봉사, 공무원 교육, 마을공동체 등 지역사회 전반의 의사결정 역량을 강화하는 든든한 민관 협력 네트워크의 중심축이 될 것입니다. 이는 나아가 평범한 시민이 투표 참여를 넘어 직접 출마까지 가능하게 하는 정치 교육의 산실로 진화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평범한 시민들이 평범한 일들을 비범하게 완수해 낼 때 건강해집니다. 광명시는 이제 풍성하고 건강한 민주주의, 시민주권이 살아 숨 쉬는 '열매 맺는 민주주의'로의 도약을 앞두고 있습니다. 광명시의 이 용기 있는 선택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