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청년활동가의 말> / 2010년 4월 / 강정모
서천군 자원봉사센터에서 군산의 군장대학의 사회복지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자원봉사강사 역량강화 교육을 다녀왔다. 왕복 6시간 거리지만 봄바람이 좋아 피곤하지 않았다. 지방 교육에서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간다. 교육현장이 가늠이 안 되기 때문에 돌발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1시간가량 일찍 도착하여 분위기를 파악하고, 교육점검과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번 서천군 자원봉사센터는 젊은 활동가가 준비를 잘 해주어서 여유가 많았다. 식사를 함께 하면서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신입 활동가였는데 서천출신이며, 고향에서 활동한지 6개월 가량되었다고 한다. 지역에 청년은 커녕 30-40대를 찾기가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대도시에서 대학을 나온 청년이 고향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활동을 한다고 하니 후배처럼 대견하였다. 그래서 이것저것 질문하는 청년 활동가에게 내가 가진 작달막한 경험적 노하우를 털어놨다. 자료가 필요하다고 해서 가져온 자료들도 폴더째 주고 왔다.
나는 서울토박이 출신이다. 그런데 우리 집안은 강원도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난 청소년기까지 강원도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다. 그렇다고 명절에 강원도를 가는 것도 아니었다. 조부모는 진작에 자식들을 따라 서울로 와서 사셨다. 아버지는 강원도 고성 위 간성에서 고등학교때 서울로 유학왔다. 딱 15년 사시고, 60년 정도를 서울에서 사신 셈이다. 그래도 강원도다. 우리 친척들은 20년 넘게 촌에서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유학온 아버지를 용쯤으로 나에게 '신화'를 주입시켜왔다. 지금은 아니신듯 한데, 50대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용은 아니더라도 자신을 '잉어' 정도로 여기고 사신 것으로 안다.
이제 나와 나의 가족은 더 이상의 전세금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한번 더 올리게 되면 서울수도권에서는 못산다. 서울수도권에서 쪼들리면서 사느니 막내가 초등학교에 가는 시점에는 지역으로 가려고 한다. (아내와 나는 개인적으로 겪은 전세금 난리통에 마음을 더 굳혔다) 이런 생각은 여러해 되었는데 일부를 아버지에게 피력하면 강원도 출신임을 내세우는 아버지는 지방에 왜 가려느냐고 하면서 아이들을 떨어지게 만들려고 하냐느니, 병원도 없다느니, 뭘해먹고 살려하냐느니 일장 연설을 한다.
아버지뿐이랴...강준만의 말처럼 "내부 식민지의 기묘한 자학이요. 자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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