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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콩나물시루]

어린이 위에 그림 그리기

강정모 소장 2015. 2. 8. 14:54


같은 그림을 그려도 종이의 질감과 색이 다르면 제 각각이다. 거친 한지에 그림을 그리면 듬성듬성 박힌 원료의 굴곡이 펜의 방향을 의도치 않게 바꾼다. 얇고, 고운 종이는 펜의 각도를 주의하지 않으면 찢어진다. 매끄러운 A4용지는 펜에 힘을 약간만 줘도 더 많이 흐르게 되어 구상한 그림보다 더 확장된다. 나비를 그릴 때 노란 종이에 그릴 때, 파란 종이에 그릴 때, 분홍종이에 그릴 때 나비는 종이마다 다른 계절을 난다.

어린이(자녀)는 저 마다 다른 질감과 색을 지닌 종이다. 거기에 어떤 그림을 그리냐는 부모(어른)의 몫이자, 권한이자, 책임이다. 부모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각자의 펜이 있고, 구상이 있다. 부모가 자녀라는 종이에 그림을 그리려면 펜이 종이에 닿기 전에 내가 그릴 종이가 어떤 색인지, 어떤 질감인지 파악해야 한다. 종이의 색과 질감과 특징을 파악하기는 쉽지만 어린이(자녀)는 종이처럼 쉽지 않다. 혼을 담은 주의깊은 관찰과 느낌이 필요하다. 그림은 내가 그릴 구상과 펜에 따라 주어진 종이를 그대로 쓰던지, 바꾸던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린이(자녀)라는 종이는 교체가 불가능하다. 그냥 주어진 것이다. 주어진 종이에 내 구상과 펜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그리고자 하는 부모의 욕구도 있다. 그래서 갈아치우듯 구상과 펜을 바꿔버리면 그리고자 하는 동기가 사라진다. 그래서 어린이(자녀)라는 종이위에 그림 그리기는 어렵다.

어려워도 그려야 한다. 아니 주어졌다면 시간은 부모를 그리기로 끌고 간다. 다만 끌려가 그리느냐, 그리느냐의 차이가 있을뿐이다. 부모(어른)는 선택한 종이가 아닌 주어진 종이에 그려야 한다. 종이에 그리기와 자녀에 그리기는 구상과 펜에 종이를 선택하느냐와 주어진 종이에 구상과 펜을 맞춰가느냐의 차원으로 나뉘게 된다.

그릴수 밖에 없다면 받은 종이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만져보고, 종이의 맥박을 느껴야 한다. 거칠수 있고, 부드러울수 있고, 밝을 수 있고, 어두울 수 있고, 고울수 있고, 흐릿할 수 있고, 얇을 수 있고, 두꺼울 수 있고, 매끄러울 수 있고, 화려할 수 있고, 칙칙할 수 있다. 종이가 그러한 것은 종이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원한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런 것'이다. 즉 종이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그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세세히 종이를 아는 것은 그리는 자(부모, 어른)의 책임이다.

알 수록 사랑하게 되고, 사랑한 정도만큼 내 구상과 펜을 바꿀 수 있다. 바꾸는 사랑은 어느 순간 종이가 종이가 아닌 그림이 되어 제 그림에 제가 배경을, 길을, 눈을, 상대를 그릴 수 있을 때 미련없이 손을 뗄 수 있는 용기가 된다. 그리고 자녀의 종이에 그림 그려야 하는 책임을 감당하느라 멈췄던 어른 자신의 그림을 완성시켜가는 여정을 다시 걷는다.


http://www.gallery-golmok.com/upcoming/index.php… (그림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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