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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콩나물시루]

빨래한다는 것

강정모 소장 2015. 2. 4. 14:07

<빨래하기>

빨래는 세탁기가 한다. 아직도 세탁기가 집집마다 보급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예외지만 세탁기가 일반화되어 있는 우리 사회에서 빨래는 세탁기가 한다. 세탁물을 바구니에 추려서, 주머니 점검하여 세탁기에 집어넣고, 적당한 세제를 넣고, 세탁물과 세탁량에 따른 최적의 버튼을 누르는 것을 '빨래하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탁기가 2시간 가까이 작업하는 것에 비해 이 전 과정을 빨래했다라고 하기엔 할 수록 민망하다.

2년전부터 집에서 빨래는 전적으로 내 담당이다. 가끔 아내가 기분좋으면 세탁기를 '돌린다.' 그간 빨래를 하며 드는 생각은 '빨래는 세탁기가 한다'는 것이다. 빨래는 내가 하지 않는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하나? 나는 '빨래를 널고, 걷고, 갠다. 그리고 갠 빨래를 지정된 장소에 가져다 둔다.' 이게 내가 하는 일이다.

내가 어릴적 세탁기가 지금처럼 일반화되지 않았을때 동네아줌마들이 빨래판과 세탁비누, 고무다라이로 반나절, 많은 때는 한나절을 쭈그리고 앉아서 빨래를 했다. 그리고 짜고, 털고, 널고, 걷고, 개고, 두는 이런 전 과정이 빨래하기였지만 지금은 과거 빨래하기의 가장 노동강도가 센 하고, 짜고는 세탁기가 한다.

그러다보니 '하고, 짜고'의 노동강도에 비해 삼분의 일도 안 되는 '털고, 널고, 걷고, 개고, 두는' 걸 '빨래하기'라고 명명하는 것은 겸연적다. '빨래널기, 빨래걷기, 빨래개기, 가져다두기(혹은 가져가기)'처럼 각각 그 행위가 명명되어야 하는 것이 시대에 맞다.

그런데 이것도 슬슬 귀찮고 힘들어진다. 특히 개고나서 식구들 옷장에 가져다두는 일은 하기 싫을 때가 적지않다. 군대에서 가장 힘든 보직은 '내가 경험한 보직'이다. 그것처럼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빨래에 인생을 보낸 시간과 노고의 백분의 일도 안 하면서 그걸 귀찮아하는 내 모습이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