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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콩나물시루]

귤의 소통

강정모 소장 2015. 2. 2. 15:44

시장이나 과일가게에서 파는 귤은 반짝거린다. 상품적 가시성을 높이기 위해 한구한구 일일히 '왁스칠'을 하기 때문이다. 겨울 비타민을 보강하기 위해 박스로 귤을 사다놓고 먹을 때 바닥엔 곰팡이가 선 귤이 꼭 있다. 박스로 귤을 사서 먹으려면 수시로 박스를 확인하여 곰팡이가 핀 귤을 솎아 버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곰팡이는 전체에 번지게 된다. 그런데 쉽게 곰팡이가 드는 이유중에 하나는 먹음직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왁스칠에 있다. 왁스칠을 하게 되면 귤표피에 있는 숨구멍이 막혀 수분이 외부와 통하지 않아 부패가 빨라진다.

나의 작은집은 제주이다. 지금은 감귤농사대신 화훼단지를 하시지만 가족이 먹기 위해 몇 그루는 남겨둔 것으로 안다. 그래서 가끔 귤을 박스로 부쳐주신다. 박스를 열어 귤을 보면 왁스칠이 없어 색이 탁하다. 색이 탁하다는 느낌은 사실 잘못된 인식이다. 탁하다는 느낌은 비본래적인 왁스칠을 귤의 본색으로 인식한 것에 기인한다. 우리가 익숙한 가게와 시장귤은 인공적인 화장빨 귤이다. 그래서 왁스칠을 하지 않은 귤은 숨쉬기를 하여 곰팡이가 쉽게 피지 않고, 훨씬 오래간다.

나는 어릴적부터 제주의 노지귤을 먹어서 그 느낌을 잘 안다. 맛도 당연히 다르다. 내가 제주에서 부쳤다는 말을 안 하고 아내에게 귤을 주었더니 놀란표정으로 이거 어디서났냐고 한다. 작은집에서 보내왔다고 하니 역시~라며 감탄한다. 그래서 아내는 소중히 먹기 위해 냉장고가 아니라 김치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식사를 하면서 귤을 디져트로 먹는데 귤맛에 전반적으로 김치냄새가 가득했다. 태어나서 이런 맛은 처음이었다. 새콤달콤시원털털시큼짜리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귤+김치+묵은지...의 혼합향으로 먹어야 할지 말지 기가막힌 경험이었다. 우리가 흔히 먹는 화장빨 귤을 김치냉장고에 넣으면 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왁스가 표피를 반짝거리며 완벽차단하고 있어서 냄새가 껍질속으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왁스칠 없는 민낯생귤은 외부와 소통하고 있어서 김치냉장고에 가득한 김치향을 머금은 것이다. 민낯생귤은 김치냉장고 같은 시스템이 없어도 실온에서 곰팡이가 피기 전까지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려준다.

귤의 껍질은 외부와 소통하게 되어 있다. 외부와 소통함으로써 쉽게 부패되지 않는다. 그러나 상품가치라는 인공의 가치를 위해 왁스칠을 하면, 사람이 보기엔 먹음직스럽게 보이나 사실 귤의 선도와 보관기간은 떨어지게 된다.

사람도 비슷하다. 외부와 소통하는 사람은 쉽게 부패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신뢰의 취약성으로 자기기만이나 자기방어가 높아지면 자존감이 저하된다. 떨어진 자존감을 가리기 위해 온갖 '레테루'로 덧칠하지만 그것은 귤의 왁스칠처럼 소통을 차단하여 오히려 부패를 가속시킨다. 학벌, 인맥, 가문, 배경을 백프로 배제하고 살아갈 순 없지만 그것은 외부와의 소통을 촉진시키기 보다는 단절시키는 효과를 낸다.

내 자신의 여기저기에 곰팡이가 핀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멈춰서 왁스칠과 같은 '레테루'들이 여기저기 덕지덕지 달려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알약의 PC관리처럼 주기적으로 싹 떼어, 노지귤처럼 있는 그대로의 민낯나로 세상에 가만히 둬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