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시평생학습원 시민교육전문가멘토링
논의주제 에세이
광명시민교육에서 민주주의 방법론의 의의
2015.10.19
강정모 소장(시민교육콘텐츠연구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이다. 대한민국의 주권(主權)은 국민(國民)에게 있고, 모든 권력(權力)은 국민(國民)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이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지만 30여 년 전 헌법 제1조는 불온하였다.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은 헌법 제1조의 의미를 다시금 새기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여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헌법 제1조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는 고백을 하였다. 그도 피로 쌓아왔던 헌법 제1조가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다는 것이리라.
87년 이후 대한민국은 제도적 민주주의를 만들어왔다. 그 결과 선거를 통한 합법적 정권교체를 이뤘고, 경제를 비롯한 눈부신 성장을 하였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제도를 만들고, 위원회나 사업회를 설치한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국민 개개인이 주권이 나에게 있음을 뿌리 깊게 인식하는데 있다. 가치에 대한 인식은 콩나물시루에 물주듯 이뤄진다. 시루에 물주면 다 빠져나가지만 콩나물은 흘러 묻은 물을 먹고 시나브로 자란다. 제도화와 기구설치는 가시적이다. 하지만 가치제고를 위한 교육은 비가시적이다. 지루하고,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스스로를 민주화 정치세력으로 칭했다. 하지만 민주화 세력의 집권 10년간 민주주의에 관한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공공적 토대형성은 미비하였다. 민간에서 꾸준히 노력한 콘텐츠와 노하우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였다. 평생교육법, 자원봉사기본법, 인성교육법, 진로관련법이 통과되었지만 진작 통과되어야할 민주시민교육법은 최근에야 몇몇 지자체에서 조례로 설치되는 정도이다. 이러한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소극성이 오늘날 헌법 제1조까지 위기를 초래하게 된 원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성리학을 국시로 삼아 건국된 조선은 사서(四書)와 삼경(三經)을 지도자를 뽑는 기본 틀로 삼았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은 가정운영의 기본원리였다. 조선이 망한지 100년이 넘었고, 스마트폰이 일상화가 되었지만 삼강오륜은 아직도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문화적 배경이다. 조선은 성리학적 가치를 백성들의 핏속에 구현키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였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국시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아닌 성리학적 질서로 운영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자본주의와 성리학적 질서가 만나면 권위주의 체제가 발생한다. 그것은 4.19이후 군부독재를 통해 충분히 경험하였다. 조선의 가치인 효(孝)와 충(忠)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가치인 자유(自由)와 공화(共和) 그리고 민주주의(民主主義)가 국가공동체의 작동 원리가 되어야 한다. 이 세 가치가 국민과 시민 개개인의 작동원리가 되는 방법은 민주시민교육 외에 왕도는 없다.
민주주의 제도와 기구를 만들었다고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는다. 제도와 기구는 담는 그릇일 뿐이다. 그 그릇을 사용하고, 누리는 것은 결국 국민이고, 시민이다. 민주주의라는 꽃은 제도에서 피어나지만 열매는 민주시민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라는 꽃을 피워놓고 거기에 만족하였다. 물론 이 꽃은 희생과 ‘피’를 부어 피웠다. 하지만 꽃은 열매의 과정일 뿐이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반복적이고, 지루하지만 교육이라는 ‘땀’이 필요하다. 조선은 체제를 유지하고 의사결정과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군주와 소수엘리트는 지속적인 성리학적 수양과 배움을 감당해야 했다. 권력이 군주나 엘리트 계급이 아닌 민(民)에 있는 민주주의는 시민 개개인이 군주나 엘리트들이 노력한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내포한다. 나라의 주인인 민(民)은 책임을 위한 민주주의의 가치, 기술, 지식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학습(學習)의 의미가 배우고 익힘이다. 배운다는 뜻은 (아이를)배다, (냄새를)베게하다와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익힘의 의미인 습(習)은 어린 새가 날기 위해 날갯짓의 연습을 하여 의식하지 않고도 행위가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즉 습관이 되도록 노력한다는 의미다. 민주주의라는 제도와 운영원리를 자동차에 비유하면 민주주의를 학습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인 면허증을 따는 것이다. 면허만 딴다고 바로 운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동적 반사작용이 일어나도록 운전연습이 필요하다. 몇 년에 한 번씩 적성검사로 차와 운전에 대한 각성과 환기도 있어야 한다.
사람은 학습을 통해 의식이 성장한다. 의식이 성장하기 위해서 학습은 입체적이어야 한다. 첫째는 운영원리의 지적습득이다. 둘째는 운영원리에 대한 사유와 토론이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즉 배움만 있고, 생각이 없으면 공허하고, 반대라면 위태롭다(맹목적이다)라며 학(學)과 사(思)의 긴밀한 관계를 언급하였다. 셋째는 경험이다. 배우고 생각하여 영근 무엇을 일상에서 구현해보는 것이다. 경험은 90%의 실패와 10%의 성취를 낳는다. 그것은 화학작용을 하여 지혜라는 결을 만든다. 지혜는 개인적이든, 공동체적이든 경험이 아니면 형성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반복이다. 반복은 지루하다. 의식의 성장은 마지막 반복에서 일어난다. 마치 정상을 앞둔 등반가의 고통과 유사하다. 성장은 계단식으로 일어나는데 처음에는 노력한 만큼 성장이 일어나다가 어느 지점에서 권태와 지루함이 지속되는 시점이 발생한다. 마치 무풍지대인 적도로 배가 들어간 것처럼 노력해도 제자리인 시기가 오는 것이다. 이 때 포기하게 만드는 지점은 노력해도 제자리, 노력하지 않아도 제자리인 점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제자리는 경각심도 흐릿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계점에 도달하기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비약적 성장을 한다. 그러다가 그 수준에서 다음 수준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유사한 제자리의 시간이 찾아온다. 어떤 것이든 성장은 반드시 지적습득, 생각과 토론, 경험, 반복훈련이라는 네 가지 과정을 거쳐서 일어난다. 네 가지 과정을 거친 성장은 비가역적이다. 즉 퇴보하지 않는다. 퇴보는 네 가지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 운동선수나 조직들간에 기량 차이가 나는 원리와 같다. 기량이 쳐지는 선수가 갑작스럽게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약발이 떨어지면 기량은 원점으로 퇴보한다. 하지만 네 단계를 제대로 밟으면 기량의 퇴보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민주주의적 운영역량은 단기간에 성장하지 않는다.
민주시민교육은 개인을 세우는 자유의 가치와, 조직을 통합하는 공화의 가치를 넘어 속한 공동체에 대한 비판과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데 목적이 있다. 한 집단의 이데올로기는 개인과 공동체를 세우고, 통합할 수 있지만 개인과 공동체가 원칙에 입각하여 움직이고 있는지 알기 힘들다. 밖에서 자신을 관찰하는 능력 즉 비판과 성찰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어떠한 사상이 개인과 조직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객관적 역량을 형성한다. 다양한 생각과 입장이 공존하지만 평화적 공존을 위해 지켜야할 공공선이 무엇이며, 그것을 합리적으로 도출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다양한 생각과 입장을 평화적이고, 합리적으로 도출하기 위해서는 방법이 필요하다. 영국의 교육학자인 데이비드 힉스(David Hicks)는 지식/정보, 가치/태도, 기술/방법이라는 교육의 세 가지 측면을 제시하였다. 현재 진행 중인 민주시민교육은 다소 지식과 가치교육에 치우쳐있다.
2000년대에 몇몇 시민사회단체에서 민주시민교육방법론을 도입하였다. 방법론은 재미있다. 민주주의가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작동할 수 있다는 신선함을 준다. 개인 삶과 공동체와 조직의 이슈와 현안을 직접 다룰 수 있는 자신감을 준다. 나는 민주시민교육 방법론을 습득하여 지역과 단체와 같은 다양한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제작하고, 가공하는 사람이다. 5~6년간 국내외의 다양한 평화적 소통기법과 민주주의 학습방법들의 자료를 모으고, 분류하고, 가공하였다. 그런데 이처럼 민주주의적 방법론이 프로그램으로 도입되다보니 실제 현장의 이슈를 담아내고, 민주적 합의를 도출하는데 작동하지 못하고, 파급력도 떨어진다. 즉 방법은 안다는 사람이나 조직은 있는데 그걸 내 문제에 적용해서 효과를 봤다는 사람이나 조직은 드물다. 심지어 교육이나 행사 프로그램에 재미를 위한 스팟(SPOT) 차원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민주주의적 소통 방법을 다루고, 보급하는 NGO와 평생학습센터 등의 기관들도 보급 콘텐츠와 프로그램은 최신이지만 정작 자기 조직운영은 그것을 적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 자신도 그렇다. 많은 방법론을 알아도 가족내에서 이견(異見)과 갈등(葛藤)을 다룰 때 제대로 방법을 적용한 경우가 별로 없다. 일단 번거롭고, 익숙하지 않다. 그리고 어색하다. 남들에게는 그렇게 능수능란한 컨설팅을 하면서 정작 내 가족의 문제엔 그렇게 어색할 수 없다. 문화적 낯섬은 민주주의가 일상화가 되는데 두터운 장벽이다. 개인도 그런데 조직은 훨씬 더할 것이다.
대한민국 시민교육과 평생학습의 모델이 되어 온 광명평생학습원은 일상에서 민주주의적 방법을 적용한 다양한 시행착오의 스토리를 축적을 제안하고 싶다. 예를 들면 피라미드 토의, 토킹스틱 의사소통, 브레인스토밍(라이팅), 거리두기, 모서리토론, 터부토론과 같은 일상에서 적용이 쉬운 것을 기관장 이하 직원들의 조직운영에 다양하게 시도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시도동기, 어색함, 준비, 실행, 불편함, 다시 원래하던 대로 돌아가고 싶은 저항, 반전, 놀라운 경험과 성과, 시너지 등이 축적되고, 기록되는 것이다. 시도되어 나온 성과만큼 꾸준하고 정직하게 광명의 다른 기관과 커뮤니티에 공유된다면 문화적 낯섬이라는 장벽을 돌파한 사례를 형성하는 것이다. 장유유서(長幼有序)에 대한 양명학적 해석은 독특하다. 서(序)는 질서, 차례라는 뜻이지만 담, 벽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장벽을 돌파하고 넘어선 자가 진정한 어른이자 장(長)이라고 해석한다. 광명평생학습원은 대한민국 평생학습의 모델이자 선두주자로서 민주주의의 일상화라는 즉 민주주의 남 얘기가 아닌 나의 민주주의 이야기를 만드는 담과 벽을 넘는 의미있는 도전이 요청된다.
이런 시도들이 경험담이 되고, 간증이 될 때 자신감이 섞어져 감동을 주는 사례와 지혜가 된다. 광명평생학습원의 민주주의적 자기 스토리가 형성되고 축적되어 공유되면 광명평생학습원이 지역에 구축한 촘촘한 네트워크를 타고 들어가게 될 것이다. 방법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내 문제에 적용한 방법적용사례이다. 내가 이것에 대해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것도 내 가족의 문제와 조직의 문제에 토킹스틱을 적용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동생의 삶과 진로문제로 부모와 나와 아내는 심각한 갈등과 소통의 단절을 겪었다. 가족이라는 특수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해묵은 감정의 발로가 소통 엉킴의 주원인이지만 민주시민교육 전문가로서 갈등을 복기해보니 부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끝까지 듣지 않고, 서로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중심주제와 관련 없는 얘기를 하게 되는 빈도가 높았다. 그래서 토킹스틱을 시도해보았다. 토킹스틱은 스틱을 가진 사람만이 발언을 할 수 있다. 스틱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중간에 끼어들 수 없다. 시간제한은 없다. 스틱은 토킹스틱의 원조격인 인디언들 것처럼 멋지고, 의미 있는 것일수록 좋다. 진지해지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시도 자체에 소진되어 물컵을 스틱 대용으로 삼았었다. 물컵같이 흔한 것으로 하니 부모는 빈번히 컵을 잡는 걸 무시하였다. 아마 독실한 기독교인인 부모에게 예수가 고통스러워하는 모형이 달린 십자가를 토킹스틱으로 삼았다면 사뭇 분위기가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당시를 회상하면 할 얘기가 많다. 이러한 얘기들이 모두 스토리이다. 스토리는 현장에서 나온다. 민주적 소통방법이 적용되는 일상은 모두 민주주의의 생생한 현장이다. 그 현장의 원천이 광명평생학습원이 되었으면 한다.
민주시민교육 방법론의 일상적 적용은 "두번째 민주화운동"이다. 군부독재를 종식하고, 제도적 민주주의를 세워서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는다. 어쩌면 정치에 대한 무력감, 비효용성, 개인의 삶과 무연관성은 독재보다 더 큰 장벽일지도 모른다. 부두노동자로 평생을 살아간 거리의 철학자 에릭호퍼는 그의 책 <맹신자들>에서 불만에 찌든 사람들이 아니라 희망에 부푼 사람들이 행동한다고 하였다. 헌법 제1조가 흔들리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아마도‘민주화가 되면 뭐하나 그 놈이나 저 놈이나 똑같네’와 ‘민주화가 되면 뭐하나 내 삶이 달라진 게 별로 없는데’라는 절망들이 쌓여 나온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제는 일상에서 피어난 민주주의의 희망, 효능감을 만들고, 쌓아야 한다. 정보 인프라는 막강한 공유기능으로 작은 것들을 크고,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다. 광명평생학습원은 방법이 삶에 적용된 일상의 민주주의, 즉 민주주의 2.0의 원천이 되어, 희망을 확산하여 변화의 지렛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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