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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사소통의 경로중 경청(聽)의 중요성

강정모 소장 2016. 2. 5. 15:45
우리가 공교육에서 배운 의사소통은 4가지가 있다.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이다. 
인터넷과 스마트 시대인 요즘은 누르기도 있다. 
국어시간에 배웠다. (영어시간에도 배웠다. 사실 모든 과목에서 배운다)
이중에서 가장 많이 배우는 부문은 무엇일까?
말하기? 듣기? 아니다. 

우리는 공부한다고 하면 가장 많이 하는 부문은 다름 아닌 읽기다. 
교과서와 참고서를 수없이 읽어대고, 외워 시험을 쳐왔다. 
읽고나서 읽기의 연장삼아 쓰기를 했다. 
사실 그 쓰기는 쓰기가 아니었다. 
쓰기는 창작이다.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기술이다.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과 글로 표현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말과 글이 같다면 내 말을 녹취하고서 그것을 글로 옮겨보면 
확연히 다른 영역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여튼 우리가 해온 읽기의 연장인 쓰기를 쓰기라고 친다면 
읽기 다음으로 많이 해본 건 쓰기다. 
그 다음은 무엇을 해봤을까? 그렇다 말하기다. 
사실 말하기도 읽기의 연장이었다. 
속으로 읽기를 소리내서 읽기로 전환한 것이 말하기였다. 
하지만 그것은 말하기가 아니다. 
내 생각을 말하 것과 교과서의 내용을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러면 거의 배우지 않은 것은 듣기다. 
우리가 듣기를 못하는 건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귓 구멍이 뚫렸다고 듣기가 되는 것이 아니다. 

듣다를 의미하는 한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들을문(聞)이고, 두번째는 들을청(聽)이다. 
들을문은 문이라는 음가에 귀가 박혀 있는 모양이다. 
그야말로 들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런데 들을청은 언뜻 보기에도 좀 심각하다. 
조각을 내 보면 무려 6개의 조각들로 이뤄져 있다. 
한자시험에 종종 난이도 조절용으로 쓰이곤 하는 한자이다. 
감각기관이 세 개나 등장한다. 귀, 눈 그리고 심장이다. 
심장을 감각기관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6개의 조합으로 이뤄진 聽의 심오성에 살펴볼때 그렇게 새겨도 될 법하다. 
심장은 느낌은 통합적 수용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을 듯 하다. 

귀와 붙어있는 왕자, 눈과 붙어 있는 열십자, 심장과 가까이 있는 하나일자
이렇게 둘둘씩 붙여서 해석해보면 유려한 한 편의 설교문도 나올법하겠다. 
즉 聞과는 차원이 다른 듣기가 聽임을 알 수 있다. 
상대에게 온 감각기관과 존재까지 동원하여 집중하는 고도의 에너지 집중행위가 
듣기인 것이다. 이렇기에 이것은 학습과 훈련이 오랫동안 수반된 행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종의 道이다. 

한 의사소통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공감적 경청을 했을 때 상대방이 내 자신에게 받는 느낌은 존중(respect)입니다"
존중은 그냥 듣는다고 보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