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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 운에 맡기는 사회를 넘어, 문명으로 나아가는 자원봉사 : 공익성

강정모 소장 2017. 2. 10. 13:20

모두를 위한 배려가 만든 기적: '커브컷 효과'

1945년 미국 미시간주 캘러머주(Kalamazoo)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는 오늘날 전 세계 도시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상이군인들과 장애인 인권 운동가들은 휠체어가 인도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보도의 턱을 낮춰달라고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초기에는 예산 낭비라는 비난도 있었으나, 막상 보도턱이 낮아지자 예상치 못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휠체어 사용자뿐만 아니라 유모차를 미는 부모, 무거운 짐 수레를 끄는 배달원, 무릎이 불편한 노인, 심지어 킥보드를 타는 아이들까지 모두가 훨씬 안전하고 편리하게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커브컷 효과(Curb-Cut Effect)'라고 부릅니다. 특정한 소수자를 위해 추구한 '공익성'이 결국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긴밀한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이 사례는, 우리가 왜 사적인 영역을 넘어 공공의 가치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당신의 안녕은 노력입니까, 운입니까?

학교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다행히 내 아이는 무사히 구출되었지만, 같은 반 친구 상당수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살아 돌아온 아이를 보며 부모는 "네가 살아서 참 다행이다"라고 말하지만, 아이는 방금 전까지 함께 웃던 친구들의 죽음 앞에서 깊은 상처를 입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내 아이가 살아남은 것은 본인의 노력입니까, 아니면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입니까?. 만약 우리 사회가 재난 앞에서 각자의 '운'에만 기댄다면, 그것은 인간의 사회가 아닌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과 다를 바 없습니다. 내 자녀가 무사하든 그렇지 않든, 어른이 앞으로 어떠한 태도와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지점이 바로 공익적 마인드의 시작입니다.

저상버스가 증명하는 일상의 공익성

공익성은 관념적인 구호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지역의 모든 공공버스를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저상버스로 교체하고, 모든 공공기관에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비장애인들은 평소에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겨울철 빙판길에 미끄러져 다리에 깁스를 하거나, 무거운 짐을 들고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내가 불편하지 않을 때는 빨리 오는 버스가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다치는 순간 비로소 저상버스의 가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세금을 투입해 모든 버스를 저상버스로 바꾸기로 결정하는 민주적 의사결정은 결국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가장 확실한 투자입니다.

 

예측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시민의 시간

20여 년 전만 해도 집집마다 '오늘도 무사히'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습니다. 이는 내일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었기에 매일의 무사함을 기원해야 했던 시대의 흔적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 문구는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개인의 사적 시간과 여력을 쪼개 공동체의 문제를 고민하는 시민들이 많아졌음을 의미합니다. 시민들이 공적 영역에 관심을 가질 때 사회는 비로소 예측 가능해집니다. 운이 우리를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계획과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로 변모하는 과정을 우리는 '문명화'라고 부릅니다.

민주주의라는 정원을 가꾸는 자원봉사

민주주의는 잘 가꾸어 놓으면 아름답지만, 방치하면 한순간에 망가지는 정원과 같습니다. 정원은 일주일만 내버려 두어도 잡초가 무성해지고 황폐해집니다. 이처럼 공동체의 가치와 민주주의 시스템도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 없이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자원봉사 활동은 단순히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영역에서 공익을 실천하며 우리 사회라는 정원을 매일 가꾸는 행위입니다. 공동체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시민들이 많아질 때, 민주주의라는 정원은 비로소 지속 가능해집니다.

우리 모두의 공공재를 수호하는 길

산, 바다, 강, 그리고 문화재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이러한 공공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뿐만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의 것이기도 합니다. 철도, 다리, 공원, 학교와 같은 사회 기반 시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공공재가 훼손되거나 소외되는 곳을 발견하고 이를 보호하여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 자원봉사의 본질입니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공공재는 자원봉사의 현장이자, 공익성을 실현하는 무대가 됩니다.

활동가를 위한 제언: 문명의 정원사를 자처하며

비영리 공익조직, 사회복지관, 자원봉사센터에서 활동하는 여러분은 우리 사회의 '문명화'를 이끄는 최전선의 정원사들입니다. 여러분의 활동은 단순히 소외된 이들을 돕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를 '운에 맡기는 사회'에서 '예측 가능한 사회'로 전환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시민들이 자신의 사적 여력을 공적 영역에 할애하도록 연결하고 독려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가꾸는 민주주의라는 정원의 꽃들이 결국 시민 개개인의 일상에 '커브컷 효과'와 같은 긴밀한 이익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공익성이라는 가치가 시민들의 삶 속에 뿌리 내릴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약육강식의 굴레를 벗어나 진정한 문명 사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헌신이 우리 사회의 인(간)성을 결정짓는 척도가 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오늘도 공익의 현장에서 묵묵히 정원을 가꾸어 주시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