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 없는 관계에서 ‘적절히’ 갈등하는 관계로
강정모 소장
국민들이 여야 국회의원 간에 싸우는 꼴을 보면서 스트레스가 심하다. 정치 갈등으로 인해 우울증 환자가 급증한다. 전국의 국민들이 횃불을 들고 철야기도회를 하기 시작한다. “신이시여~ 제발 국회의원들이 정쟁을 멈추고, 여야간 모든 쟁점들이 순탄히 합의되게 하여 주소서.” 국민들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아 신은 기도를 들어주기로 결정한다. 다음날부터 여야 국회의원들이 갑자기 안 싸우기 시작한다. 그간에 무례한 태도와 발언에 대해 상호 간 사과하고, 화해의 허그 이벤트가 언론에 훈훈하게 실린다. 실제로 그간 꽉 막혔던 쟁점 이슈들이 줄줄이 합의, 통과된다. 와~ 우리나라가 이런 날도 오는구나.... 이번만이 아니다. 계속 이런 분위기가 지속된다. 10년, 20년, 30년... 이런! 잠을 깨니 꿈이었다....
꿈이 아닌 실제라면 30년 뒤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가 될까? 과연 이런 나라가 있긴 할까? “에이~ 그런 나라가 어디 있어?” 그런데 있기는 있다. 독재국가다. 독재국가에 선거가 있냐고? 대표적 독재국가인 북한에 선거가 없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북한의 정식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포털에 ‘북한 선거 포스터’를 검색해 보라. 북한은 엄연히 선거가 있는 나라이며, 심지어 북한의 선거연령은 오래전에 우리보다 낮은 17세로 헌법에 명기하였다. 북한의 투표율은 100%를 자랑한다. 찬성율도 100%이며, 최근에 100% 깨졌다는 얘기가 있는데 진위여부는 확인이 필요하다. 갈등 없는 국회와 국가... 자 어떤가??
그렇다. 국회와 시군의회란 갈등하는 곳이다. 갈등은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엔진이다. 3명 이상이 모이고, 3명 이상 관계에 관련된 모든 사안은 의사결정이 요청된다. 공동체 내 공적이슈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을 정치(政治)라고 한다. 즉 정치란 공동체의 의사결정과정이다. 공동체 내 의사결정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맛있는 것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둘째. 하기 싫은 것을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이다. 공동체에 의사결정과정이 작동되기 시작한다는 것은 마치 임신이 되면 수정된 태아의 심장이 박동하기 시작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주민조직에 정치(政治) 작동은 조직이 이제 생명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적 작동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수반한다. 즉 의사결정 과정의 갈등이 발생한다는 것은 조직이 심장이 박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좋다, 나쁘다의 가치판단은 적합하지 않다.
3명 이상으로 구성된 모임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의견이 다른 경우가 발생한다. 의견의 차이로 인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이러한 갈등은 적절히 관리되어야 할 조직의 ‘불(에너지)’와 같다. 의견이 다른 상방을 사안에 대한 반대자(反對者, opponent)라고 한다. 하지만 주민조직사업에서 공공의제를 다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반대자를 적(敵, enemy)으로 여기는 경우가 발생한다. 반대자와 적은 어떻게 다를까? 반대자(反對者)란 ‘나를’ 반대, 거부,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견’과 다른 존재를 반대자라고 한다. 하지만 적(敵)이란 ‘나의 존재’를 거부, 무시하는 존재이므로 나의 생존을 위해 제거(除去)해야 할 존재다. 반대자와는 ‘대화’해야 하지만 적은 ‘제거’ 해야 한다. 그래서 주민조직을 운영하는 사회복지사들은 참여주민들이 공공의제에 대한 논의 시 갈등의 발생을 의견 차이로 인식하도록 촉진해야 한다. 담당 사회복지사는 참여주민들이 갈등을 자신이 거부되거나 무시받음으로 인식하는 오류를 지속적으로 수정해 주고, 건강한 토론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갈등조정이라고 한다. 갈등조정 기술은 주민조직 담당자의 핵심기술이자, 사회복지 필드워크 전문성의 최종 심급(審級)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주민조직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는 주민조직을 갈등이 없는 관계가 아니라 ‘적절히’ 갈등하는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주민조직 내 구성원들은 무엇 때문에 갈등할까? 활동(일) 때문에 갈등할까? 아니면 관계 때문에 갈등할까? 그렇다 이 글을 읽는 사회복지현장에 계신 분들 수많은 갈등현장에 딛고 있을 것이다. 현재 맡고 있는 과업이 힘드신가? 아니면 과업과 연관된 이해관계자들 간의 복잡성 때문에 더 어려운가? 대부분 관계 때문에 갈등이 일어난다. 그래서 많은 사회복지현장 담당자와 참여자들은 “일은 어려워도 어떻게 하겠는데, 사람이 더 힘들다”라는 호소를 자주하게 된다. 그런데 관계로 인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관계 얘기를 할까? 아니면 활동(일) 얘기를 할까? 관계로 인한 갈등이지만 활동(일) 얘기를 주로 한다. 그러니까 갈등이 조정되거나 해결되지 않는다. 갈등당사자들은 해 떨어지기를 기다리게 된다. 저녁이 되면 음주를 하면서 알코올의 힘을 빌어 관계 얘기를 한다. 섭섭함 등을 얘기하면서 풀린다. (때로는 더 싸우기도 한다) 그런데 그 다음날 되면 또 활동(일) 얘기를 한다. 저녁을 기다리며, 2차를 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주민조직 현장, 사업운영시 갈등을 잘 조정한다는 것은 ‘맨 정신에 관계 얘기를 하는 역량’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맨 정신’에 ‘활동’ 얘기는 익숙하지만, ‘맨 정신’에 ‘관계’ 얘기는 영 낯설다. 그렇다면 맨 정신에 관계 얘기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성과 내용으로 의사결정 할까? 아니면 감정과 욕구로 의사결정 할까? 답은 ‘둘 다’이다. 그러나 사회복지 현장, 주민조직 현장에서 의사결정 기준은 이성과 내용, 감정과 욕구 중에 어떤 쪽이 더 영향력이 클까? 감정과 욕구다. 이성과 내용을 의사결정의 더 비중 있는 기준으로 삼는 영역은 아마도 ‘법조계, 법조현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감정과 욕구를 다루는 의사소통 방법이 우리가 사회복지 실습에서 다루는 ‘공감경청, 나-말하기, 열린(개방형)질문’ 등이다. 문제는 영어시험 만점을 받았다고 해서, 지나가는 외국인과 소통이 원활하게 되는 것이 아니듯이, 사회복지 실습에서 감정과 욕구를 다루는 소통방식을 배웠다고 해서,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습보다는 연습이 필요하다. 주민조직 현장에서 사업운영시 이해관계자(the persons interested) 간의 욕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변화되고 싶다. 둘째, 문제없고 싶다. 주민조직 사업 참여주민과 서비스 수혜주민의 욕구는 ‘변화되고 싶다’ 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업을 운영하는 사회복지사 또는 기관 직원들의 욕구는 ‘문제없고 싶다’ 일 것이다. 주민조직 사업 참여주민이 기관 직원이 된다면 바로 욕구는 ‘문제없고 싶다’로 전환될 것이다. 어떤 욕구가 맞는가?라는 질문이 틀렸다. 욕구는 맞고, 틀림이 없다. 하지만 주민조직 현장에서 욕구를 맞고, 틀림의 틀 안에서 다루는 모습을 자주 직면하게 된다. 사회복지사는 욕구를 맞고, 틀림의 사안으로 소통하는 흐름을 차단하여, 이해관계자들이 정오(正誤) 패러다임 가운데 욕구와 느낌을 다루는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민조직의 시대, 사회복지 전문성은 결국 관계력과 조정력이다. 행정력은 일선 공무원과 AI로 점차 이관될 것이다. 이성과 감정, 내용과 욕구, 합리적이지만 합리화하는 인간의 양면성에 직면하여, 개인과 공동체의 변화를 일구는 역량이 사회복지사의 전문성으로 정의(定義)될 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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