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교육콘텐츠연구소

사무실 번호 : 070-4898-2779 / 대표메일 : streamwk@gmail.com

콘텐츠나눔

[조직역동] 조직규범/역할/지위/소통_집단역학, Donelson R. Forsyth 5장

강정모 소장 2016. 3. 22. 13:08

극한의 고립이 드러낸 집단의 본질적 구조

안데스 산맥의 설산이라는 극한의 고립 상태는 인간 집단이 생존을 위해 어떤 구조를 형성하는지 보여주는 가장 처절하고도 명확한 실험실이 됩니다. 영화 <얼라이브>는 문명과 단절된 무질서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규범을 세우고, 역할을 나누며, 의사소통의 망을 구축하여 거대한 위기에 대응하는지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이 드라마틱한 실화는 오늘날 우리 조직이 마주하는 수많은 난관 속에서 '집단구조'가 단순한 형식이 아닌, 생존과 직결된 유기적인 생명체임을 일깨워줍니다. 추락 사고 직후, 생존자들은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즉각적인 지위 분화역할 분배를 시작합니다. 의대생들은 부상자를 치료하는 '사회·정서적 역할'과 '과제 역할'을 겸하며 집단의 안정을 도모하고, 체력이 강한 이들은 식량을 구하거나 탈출로를 찾는 과업에 투입됩니다. 특히 '인육 섭취'라는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서, 이들은 생존을 위해 기존의 사회적 규범을 해체하고 "살아남은 자가 끝까지 살아가야 한다"는 새로운 규정적 규범을 합의해 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리더십의 변화와 의사소통의 흐름은 집단의 운명을 결정짓는 핵심 기제가 됩니다.

 

https://blog.naver.com/tolkhin1/221060309899 / 사진출처

 

보이지 않는 질서, 집단 규범의 두 얼굴

집단 내에는 구성원들이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느끼며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통된 기대가 존재하는데, 이를 규범이라 부릅니다. 대다수가 따르는 보편적인 양식인 ‘규정적 규범’을 위반하면 대중은 그를 비정상적으로 인식하지만, 반드시 지켜야 하거나 금기시해야 할 잣대인 ‘금지적 규범’을 어기면 부정적인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때로는 공식적인 규정에는 어긋나지만 집단 내부에서 기형적으로 작동하는 금지적 규범이 구성원을 억압하기도 하기에, 조직은 늘 우리만의 질서가 건강한 가치를 지향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위기 속에서 선명해지는 역할의 분화

역할은 사회적 맥락 안에서 개인을 정의하는 행동들의 집합체입니다. 집단은 성원들이 상호작용할 때 각자 맡아야 할 지점을 짚어줌으로써 전체의 움직임을 체계화합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분화는 평온할 때보다 위기를 극복해야 하거나 험난한 과제에 직면했을 때 더욱 기민하게 일어납니다. 역할은 목표 달성에 매진하는 ‘과제 역할’과 구성원의 심리적 욕구를 돌보는 ‘사회·정서적 역할’, 그리고 공동체보다 개인의 욕심을 앞세우는 ‘이기적 역할’로 구분됩니다. 각자의 위치가 선명하지 않으면 조직은 결정적인 순간에 추진력을 잃게 됩니다.

 

평등의 가치와 지위 분화의 현실

인간은 평등하다는 이상을 품지만, 집단이 형성되면 필연적으로 서열과 위계가 나타납니다. 초기에는 대등하게 출발했을지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활동을 조정하고 의사소통을 중재하는 권한이 특정인에게 쏠리는 ‘지위 분화’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위계는 효율성을 위해 발생하지만, 자칫 존재의 우열로 오인될 위험을 내포합니다. 우리는 지위와 존재가 결코 동일하지 않음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지위는 과업 수행을 위한 한시적이고 계약적인 장치일 뿐이며, 인간의 존재 자체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적인 존엄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소통의 망이 결정하는 조직의 생명력

집단 내 정보가 흐르는 통로인 의사소통망은 조직의 건강성을 좌우합니다. 과제가 단순할 때는 중앙집중적 망이 효율적이지만,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는 구성원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탈중앙집중적 망이 훨씬 뛰어난 성과를 냅니다. 정보는 흔히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현장의 생생하고 가치 있는 정보는 아래에서 위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황에 따라 소통 방식을 유기적으로 변화시키는 유연함이야말로 조직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핵심 동력이 됩니다.

 

모호함이 가져오는 내밀한 갈등, 역할 스트레스

많은 활동가가 현장에서 겪는 고통 중 하나는 바로 역할의 불분명함입니다.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 수 없는 ‘역할 애매성’에 놓이면 구성원은 불투명한 지침 속에서 표류하며 성취감을 잃어버립니다. 특히 NPO 활동가들은 한정된 인력으로 여러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이중 직무’ 상황에 자주 노출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행해야 할 업무를 직무 명세서와 같이 구체적인 언어로 명문화하여 서로의 기대를 투명하게 조율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때 우리가 붙잡아야 할 기준은 '다름'을 '불평등'으로 치환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역할과 지위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잠시 빌려 입은 '옷'과 같습니다. 옷이 몸 자체가 될 수 없듯, 조직 내 서열이 나의 인간적 가치를 규정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지위와 존재를 혼동하는 순간 갈등의 골은 깊어지지만, 이를 분리하여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를 동등한 주체로 존중하며 건강한 협력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JbjMeDGfC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