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운동의 통합적(統合的) 비전으로서
‘민주’와 ‘평화’의 상관성 연구
조철민, 강정모(NPO스쿨 부대표 공저)
1. 현시대에 관한 인식
우리 사회는 정부 수립 이후 산업화와 근대화를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 하지만 경제성장을 기치로 전 사회가 동원되는 과정 속에, 사회의 성숙은 도외시 되어왔다. 특히 정치적 민주주의의 진전에 따라 정부․시장과 함께 사회를 이끌어갈 시민사회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으나, 이를 감당할 시민들은 정치적 무관심, 이기주의, 패배주의, 냉소주의, 경쟁지상주의에 젖어 의기소침해 있다. 또한 시민사회 공유가치가 정립되지 못한 채, 절제되지 못한 개인과 집단의 욕구가 분출되고, 이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분출하고, 신자유주의 경제로 인한 사회 양극화는 우리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인류 역사의 극히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는 근․현대의 역사는 인간들의 삶을 크게 뒤바꾸어 놓았다. 권력의 중심이 카리스마Karisma와 폭력으로부터 ‘자본’으로 옮겨가면서 모든 인간과 국가는 생산력의 증대와 보전에 온 힘을 기울여 왔고, 그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물론 과학기술의 진보와 자본주의 발달이 인류가 전에 경험하지 못한 경이와 풍요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편익으로 상쇄하기 어려운 심각한 폐단들이 나타나고 있다. 물질우선주의의 조류나, 자본과 생산력 중심의 획일적인 가치의 만연, 그리고 한정된 유무형의 자원을 둘러싼 권력 간의 빈번한 충돌 등으로 인해 직․간접적인 폭력과 분쟁, 그리고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반도는 식민지배와 전쟁, 열강의 세력다툼이 지속되는 역사적․지정학적 배경 속에 평화가 정착되기 어려웠다. 더욱이 냉전체제의 영향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 탈냉전 시대인 지금도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민족의 생존을 좌지우지할 전쟁의 위협이 상존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역사상 그 어느 때 보다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많은 시민들은 행복을 잃어가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무한경쟁의 사회환경과 소비중심의 생활양식으로 인해 몸과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의료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섭리에 벗어난 생활로 건강을 지키지 못하고, 스트레스와 관계에 있어서의 갈등, 정보의 홍수 속에 마음의 평안을 갈망하고 있다.
2. 시대적 과제
위에서 언급한 여러 층위의 사회문제들에 대해서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돼 왔다. 각각의 논의들이 그 내용은 달리하지만, 위와 같은 문제들이 오늘날 시민들의 행복과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며,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인식을 같이한다. 따라서 시민의 행복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주체라면 당연히 위와 같은 사회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비전과 대안을 마련하는데 매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에 대한 규명이 선행돼야 한다. 사회문제들의 원인과 양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3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간’의 상실
현대사회는 몇 가지 생존에 필요한 전문분야를 습득한 기능인들이 양산되고, 역사와 세계, 그리고 삶에 대한 통찰력을 지니는 ‘인간’이 상실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본질인 자아실현은 잊은 채, ‘성공’과 ‘안정’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거대한 자본주의 경제체제 속의 부속품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이로 인해 현대인들의 내면은 원인 모를 고독, 허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관계'의 상실
한마디로 나무들만 존재하고 숲이 없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흐름 속에 시민들은 개인으로 환원돼 흩어져서 존재하고 있다. 개인의 욕망과 이해관계가 실질적인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시대가 도래 했다. 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와 사회가 와해되고, 현대인들은 익명성과 개인의 자유를 얻은 대신 관계로부터 얻는 사랑과 관심, 위로와 지지를 잃어 가고 있다.
‘가치’의 상실
인간의 삶은 세계 속에서 통합적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현대사회가 전문화․세분화․다양화함에 따라 그 어느 때 보다 다양하고 방대한 사상과 지식, 기술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현대인들은 그 중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리고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향유해야 하는 지 알 수 없는 복잡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또한 많은 현대인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관한 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오늘날 벌어지는 수많은 사회문제의 근저에서 위와 같은 원인들이 작용하고 있다는 논의에 동의한다면 이제 이러한 원인들에 어떻게 접근하고, 대처할 것인지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는 곧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며, 동시에 현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시급한 ‘바람’이자 ‘필요’(대중의 욕구)라 할 수 있다. 그 방안은 한마디로 상실된 ‘인간’, ‘관계’,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간략히 표현할 수 있다.
3. 이 글에 관하여
사실 이글은 청년평화센터 ‘푸름’의 평화운동의 비전과 운동론을 정리한 ‘평화연구 총서 (1) - 푸름이 생각하는 평화․평화운동․평화교육’의 서설序說에 해당하는 글이다. 푸름의 구성원들이 ‘평화연구 총서 (1)’을 함께 작성할 때, 위와 같은 시대적 상황과 과제를 인식하면서 작업을 진행했다. 물론 그때의 인식과 이 글을 쓰고자 하는 현재의 인식은 본질적인 부분에서 같다. 하지만 운동론을 세우고 몇 년간 활동을 진행하며, 다양한 생각을 가진 분들과의 대화 속에서 애초의 인식이 좀 더 명확해지며 확장되는 느낌을 갖게 됐다. 이러한 인식의 성장은 여러 지인知人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고백과 함께, 이것이 몇몇 사람의 머릿속에만 남아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부족하지만 정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 글은 위와 같은 시대적 과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의 올바른 변화를 위해 기여해 온 ‘이 시대에 사회운동이 어떤 비전과 운동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에 관한 것을 다루고자 한다.
이 글의 많은 생각들은 아직 설익고, 학문적 검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역사의 중요한 변화, 특히 사회운동에 있어서는 현장에서 시대의 아픔을 자기 것으로 느끼는 실천가들로부터 중요한 통찰들이 나왔다는 사실에 의지해 활동의 과정에서 성찰한 것들을 조심스럽게 나누어 보고자 한다. 이 글의 결론을 미리 밝히자면 이 시대의 과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화’와 ‘민주’라는 정신과 가치의 토대위에 사회운동의 통전적인 비전을 세우고, 그에 따른 운동의 과제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디 각 영역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다양한 사회운동 주체들의 통전적 비전에 관한 토론이 활성화되고, 이를 토대로 협력하여 선善을 이루는 일들이 많아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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