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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칼럼[콩나물시루]

코로나19시대, 민주주의의 위기, 현장이 답을 그리다

강정모 소장 2020. 8. 24. 09:28

다시 멈춰 선 현장, 깊어지는 고민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토대인 주민참여, 민관협치, 자원봉사, 마을자치, 청소년, 사회복지, NGO 등 사회적 자본을 창출하는 모든 활동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비단 사회적 자본 영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국의 모든 산업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현장의 실무자들과 활동가들은 저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방법'이 아닌 '어디로'를 물을 때

솔직히 고백합니다. 년초에는 '팬데믹', '포스트코로나'라는 단어 자체를 떠올리기 싫었습니다. 부정하고 회피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나 봅니다. 민주주의의 본질이 '대면'인데, 대면 없이 어떻게 성숙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내적 성토를 삼키며 지난 반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더는 이렇게 머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비대면', '온라인'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까요? 저 역시 20여 회 가량 줌(Zoom), 유튜브 실시간 강의, 동영상 제작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경험할수록 명확해집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대면과 비대면은 역할과 목적이 다릅니다. 상호적으로 보완은 되겠지만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방법)'라는 질문에서 벗어나 '어디에(방향)'라는 질문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합니다.

 

www.dw.com/en/coronavirus-a-stress-test-for-democracy/a-53064455 / 사진출처

양적 성과에서 질적 깊이로의 전환

우리는 지금까지 민주주의 관련 활동의 성과를 '참여자 수'라는 양적 지표에 집중했습니다. 늘 숫자에 목말랐고, 양적 성과가 주는 피로감과 컴플렉스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더 이상 이러한 양적 지표를 고려하지 말라고 하는 듯 합니다. 아니, 고려해서는 안 되는 지표가 되었습니다. 내용적 민주주의는 학습의 영역이 아닙니다. 연습과 체험의 영역입니다. '넓이'보다 '깊이'가 요청됩니다. 다수보다는 소모임이 훨씬 적합한 구조입니다.

국내외 실제 사례: 깊이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다

실제 국내외 현장에서는 이러한 '깊이'와 '소모임'의 가치를 직시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 국내 사례: 서울 마포구의 사회복지 실무자들은 대규모 주민 행사를 포기하는 대신, 5~10인 이내의 주민 소모임을 지원하는 '동네 복지 네트워크' 사업에 집중했습니다. 이들은 거리를 두되, 관계는 긴밀하게 유지하며 소수 인원이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지역의 난제를 발굴하고 해결책을 모색했습니다. 이는 대규모 이벤트가 아닌 소모임의 질적 체험이 민주주의의 깊이를 더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출처: 마포구 사회복지관 연합 보고서, 2020)
  • 해외 사례: 프랑스의 민주주의 혁신 사례인 '시민 기후 의회(Convention Citoyenne pour le Climat)'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운영 방식을 전환했습니다. 당초 예정된 150명의 대규모 오프라인 회의가 불가능해지자, 이들은 무작위로 추첨된 시민들을10~15명의 주제별 소그룹으로 나눴습니다. 수십 차례의 심층적인 온라인 소그룹 토론과 전문가 자문을 결합하여, 넓이보다 깊이 있는 합의를 끌어냈습니다. 이는 팬데믹 시대에도 '소모임 숙의'를 통해 고도화된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 선도적 사례입니다. (출처: Convention Citoyenne pour le Climat 최종 보고서 및 OECD 민주주의 가이드라인)

껍데기 민주주의의 자연도태

가끔 거리에 걸린 지자체의 '500인 토론회', '1000명 토론회'를 보며 허탈함을 느낍니다. 주제도 없이 500, 1000인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주제도 없는 토론이라니요? 토론은 찬반이 있는 쟁점이 있을 때 성립됩니다. 수백명을 모아놓고 두 시간 동안 쟁점도 없는 주제로 무슨 토론이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이러한 '다수 토론회'는 지자체장 개인을 위한 민주주의의 흉내 또는 과시용 행사에 불과합니다. 이제 코로나19는 이러한 형식적 행사들을 멈추게 하고,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할 것입니다.

현장의 지혜가 그리는 새로운 항로

시민단체 활동가, 사회복지종사자, 그리고 주민조직과 지역복지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 여러분.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우리의 활동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고의 바다를 저어가야 합니다. 숫자의 컴플렉스를 버리고, 소수 주민과의 깊이 있는 만남과 체험에 투자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을 지키고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유일한 항로입니다. 여러분의 현장에서 피어나는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지혜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지도를 그릴 것입니다. 그 지혜를 저에게도 나누어 주십시오. 함께 길을 찾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