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교육콘텐츠연구소

사무실 번호 : 070-4898-2779 / 대표메일 : streamwk@gmail.com

연구소칼럼[콩나물시루]

코로나19시대, 가성비 복지의 함정과 사람 지표의 회복

강정모 소장 2020. 8. 24. 09:42

위기가 남긴 낯선 질문

코로나19 팬데믹은 단순한 감염병 위기를 넘어선 문명사적 전환을 요구하는 '혁명'이었습니다. 이 시기를 지나며 우리의 삶의 방식과 이를 측정하던 지표들은 송두리째 흔들렸습니다. 매일 반복되던 익숙한 일상들이 낯설게 다가왔고, 동시에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명의 속도가 잠시 멈춘 이 거대한 위기의 이면에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삶의 본질을 깊이 고찰하게 됩니다.

 

www.idea.int/our-work/what-we-do/covid-19-and-democracy

교육, 규모를 줄이고 관계를 넓히다

교육전문활동가의 관점에서 교육의 현주소를 들여다봅니다. 학교 현장에 파격적인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 학급을 다시 A, B, C팀으로 나누어 오전, 오후, 저녁 3부제로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되면 한 공간에는 열 명 미만의 학생만 남습니다. 현재 심각한 임용 적체 문제를 겪는 교사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소수 학급 운영은 질 높은 수업 준비를 가능하게 하며, 교사와 학생 간의 깊은 인격적 교류를 회복하는 토대가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평가의 질도 바꿉니다. 교사 한 명이 담당하는 학생 수가 줄어들면, 아이들도 눈치채는 천편일률적인 '복사해서 붙여넣기(복붙)'식 생활기록부 기재는 사라질 것입니다. 교사를 괴롭히던 비본질적인 행정 과업도 자연스럽게 축소됩니다. 세 개의 트랙으로 학교가 운영되니 관련 일자리도 늘어납니다. 운영 규모는 작게 줄이되, 만남의 빈도는 높이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규모의 경제에서 관계의 경제로

실제로 해외에서는 이러한 소규모 학급 운영이 학업 성취도뿐만 아니라 심리적 방역에도 효과적임을 입증한 사례가 있습니다. 덴마크의 경우, 2020년 4월 봉쇄 조치 해제 후 학교 재개교 시 학급당 인원을 10~12명 수준으로 제한하고, 학생 간 거리두기를 철저히 지키는 '보블(Bubble)'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출처: World Economic Forum, "How Denmark is learning to go back to school during COVID-19", 2020.05.11). 이는 감염 확산을 막으면서도 밀착형 교수 학습을 가능하게 한 성공적 사례로 꼽힙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시도가 있었습니다. 서울시 서대문구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대형 복지관 중심의 서비스가 중단되자, 주민 거점 공간을 활용한 '골목 복지'를 강화했습니다. 사회복지사들이 좁은 골목을 직접 다니며 소규모로 주민을 만나고 건강을 챙기는 방식은 거대 시설 중심 복지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이 되었습니다. (출처: 서울시 복지재단, "코로나19 1년, 서울시 사회복지시설의 대응과 과제", 2021).

신자유주의적 비용 절감이라는 함정

이런 제안에 대해 당장에 늘어날 인건비와 재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클 것입니다. 그러나 인건비를 아낀다는 것은 우리 경제사회의 '피'를 아끼는 것과 같습니다. 피가 돌지 않으면 사회라는 유기체는 말라갑니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개인은 지출을 아껴야 하지만, 국가는 반대로 재정을 풀고 투자를 늘려야 합니다. 개인도 아끼고 국가도 함께 인건비를 아끼려 했던 시도가 바로 신자유주의였습니다. 그 결과는 공동체의 붕괴였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아이는 교육 현장에서 '효율성'이라는 명목하에 수업을 '받는' 것이 아니라 '처리'당해왔습니다. 학교에서 처리하지 못한 부족분은 고스란히 사교육 시장이 담당했습니다. 아이들은 수업 처리를 당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코로나 국면을 기회 삼아 우리는 '산다는 것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소위 양적 성과지표 중심의 사회를 다양한 질적 성과지표로 다시 그릴 수 있는 적기입니다.

시민사회와 복지 현장에 드리는 제안

이제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사회복지종사자, 특히 주민조직과 지역복지를 담당하는 여러분에게 말을 건네고자 합니다. 교육 현장의 고민은 복지 현장의 고민과 닮아있습니다. 거대한 시설과 대규모 프로그램 중심의 복지를 지양하고, 골목으로 들어가고 주민의 삶 속으로 깊숙이 스며드는 소규모의, 여러번의 만남을 조직해야 합니다. 그것이 위기 시대에 공동체를 살리는 길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현장의 지혜와 역량을 이제 '규모의 축소'와 '관계의 심화'라는 방향으로 수렴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가성비를 넘어 사람의 가치를 증명하는 복지 현장을 함께 만들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