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어른들이 돌아가신다’, ‘어른이 없는 시대다’라는 어른부재’에 대한 안타까움들이 종종 회자되곤 합니다. 저도 하나 둘씩 큰 사람들이 돌아가실때마다 가슴에 텅 빈 공허가 가을바람처럼 스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어른들이 있던 시대와 지금을 비교해봅니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이 변했고, 지금의 대한국민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인권의 다양한 측면에서 훨씬 성장하고, 성숙하였습니다.
어른들이 없어지는 시대가 안타깝긴 하지만 어쩌면 어른들이 요청되지 않는 사회로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과거에 우리는 왜 그토록 어른들을 좋아했을까요? 어른들을 좋아했다기 보다는 어쩌면 대한국민들은 ‘어른들’이 필요해서 ‘어른들’을 만들어왔던 건 아닐까요? 어른들이 많았고, 그들로 인해 살아갈 힘을 얻을수 있었다는 고백들에는 그 어른들을 의존하는 ‘어린이들’이 많았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러므로 ‘어른이 부재한 시대’라는 말에는 ‘어른이 필요없는 시대’라는 의미도 내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역량이 취약해질수록 어른으로 떠받드는 영웅들이 많이 출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권위주의적 문화가 확산된 공동체일수록 구성원들은 완전한 인간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양상을 띕니다. 반면에 공동체에 민주적 문화가 풍성해질수록 구성원들은 누구도 완전할 수 없음을 받아들여, 구성원 모두가 협의하여 답을 찾아가려는 환경이 형성됩니다.
그렇다면 ‘어른’이란 누구일까요? 과거에는 왜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어른이 필요했을까요? 바로 그 어른들이 나 대신 ‘선택’을 해주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삶이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의 나란 수많은 선택의 보람과 시행착오의 산물이며, 앞으로 내가 내릴 수많은 선택의 결과로 구성되어져갈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내려야 하는 ‘선택의 자유’가 처음에는 설램으로 다가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설램은 커녕 악몽의 원인으로 돌변하곤 합니다. ‘진학을 할까, 직장에 갈까, 이 학교, 저 학교, 이 전공, 저 전공, 이 직장, 저 직장, 이 여자, 남자, 저 여자, 남자, 연애, 결혼, 출산, 주택구입, 대출, 관계, 이별, 제안 등’ 생각만해도 밤잠을 설치게 하는 이슈들입니다.
개인의 이슈도 이럴진대, 사회와 국가공동체는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이러한 선택들이 무슨 이유로 우리를 힘들게 할까요? 선택이란 반드시 ‘책임’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또 다른 저서 <자유로부터 도피>라는 책에서 사람은 책임의 무거움에 대한 공포 때문에 ‘선택의’ 자유에서 도망치는 존재들이라고 심리, 사회, 역사적 분석을 했습니다. 어른이 있던 시대엔 어쩌면 대다수의 대한국민들의 ‘어린이’였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그 어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와 우리’ 대신 생각해주고, 선택해주고, 책임져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점차 나와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책임도 지려는 역량을 길렀는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생각에 힘겨워하고, 선택에 밤잠설치며, 책임에 가위눌리기는 해도 스스로 해볼수 있는 시대를 살기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내 삶에 놓인 ‘선택’을 스스로 감당하고, 책임지고, 받아들일 때 그는 나이와 상관없이 ‘어른’이며, 비로소 ‘시민(市民)’으로 탄생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아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함께 생각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는 사회가 ‘시민사회(市民社會)’입니다. 온전한 시민사회는 어른이 부재한 사회가 아니라 대다수가 어른이라서 어른이 필요없는 성숙한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에게 정답을 기대하는 사회가 아니라 선택의 기로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수긍(首肯)하는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가 시민사회입니다.
어른이 없는 시대는 다수가 어른이 된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너무 아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떠나신 시대의 어른들은 우리가 마냥 품안의 어린이들로 머물러 있길 원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이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어른들이어야 하며, 주인이어야 합니다. 주인은 정답이 없고, 애매모호함을 견딜수 있는 존재입니다. 개개인이 주인, 주권자, 책임자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뒤로 돌아갈수도 없습니다. 이 책임의 무게를 피곤하게 여기지 않으려면 우리의 선택지는 오직 하나입니다. 지속적으로 민주시민으로서 역량을 학습하고, 연습하고, 경험하며, 반복하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민주시민교육이 활성화되고, 양질의 콘텐츠들이 개발되어 시민들이 성숙한 민주시민 즉 선택하고 책임지는 어른으로 역량을 키우기 위한 여정의 지도가 많은 지자체에 확산되길 바라며 글을 닫습니다.
2020 광명시 민주시민교육 과정개발 소감문
광명시민주주의교육센터 [요즘시민] 기고문
202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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