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교육콘텐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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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콩나물시루] 92

갈등중인가요? 한 걸음 멈춰서 이 시작을 "왜" 했는지 물어보시길...

재작년 강화의 한 음식점 화장실에서 인생 통증을 겪고, 더러운 바닥을 기어나왔었다. 허리디스크가 발생한 것이다. 직업병인지, 유전인지 올게 왔다. 꽤 받아둔 스케줄로 노심초사하면서 노인처럼 엉금엉금하면서 한의원을 다닌지 이주일만에 허리통증은 가라앉았다. 그런데 허리디스크가 무서운 건 허리통증을 가라앉은 이후부터였다. 다리 뒤근육이 찢어질듯 당기기 시작하는데 허리통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력이 잡아당기는 느낌의 찌르르르 쏟아지는 전기적 자극은 하루하루 죽고싶은 심정이었다. 아내가 내 신경질을 받아주며, 출강을 할 때마다 테이핑을 해주었다. 지역에 조사건을 맡은 것이 있어서 다른 위원들과 동네를 조사하러 돌아다니면서 위원들중 가장 젊고, 건강했던 나는 이백미터 걸을 때 마다 앉을수 있는 곳마다 앉았다. 보..

나를 아는 것과 그런 나를 받아들이는 것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신전문구를 인용하여 던진 철학의 명제다. 이 명제가 오묘한 건 나이를 먹을수록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자신을 아는 것이 철학의 제1과제라고 한다면 '그 때 그 때 안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실천의 제1과제이겠다. '자신을 아는 것'과 '안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자신을 아는 것은 힘들다. 안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훨씬 더 힘들다. 예를들면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싫어하고, 잘 못하고, 능력이 안 되는구나'를 받아들이는 것도 어렵지만 경험적으로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좋아하고, 잘하고, 능력이 되는구나'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전자만큼 어려워한다.

몸과 조직의 체계_'새로움'은 '버림'에서 시작된다

몸은 크게 소화계 신경계 순환계 호흡계 근골격계 로 이뤄져있다. 조직도 몸의 시스템에 비유가 가능하다. 경험상 문제가 있다는 조직 얘기를 듣다보면 신경계까지도 갈 필요없이 소화계 정도에서 대부분 '병식'이 있다. 특히 많은 조직들이 "소화"장애를 겪고 있다. 겨우 위에서 소화되었다하면 다음에는 장에서 흡수를 해야하는데 흡수되기도 전에 새로운 걸 집어넣는다. 그래서 영양분을 흡수하지도 못하고, '트름'에 시달린다. 더 심각한건 '배설'을 못한다는 것이다. 소화계는 입, 식도, 위, 장 그리고 '항문'까지를 소화계라 한다. 들어가는것만큼 버려야 한다. 입으로 먹는만큼 그 때 그 때 버리지 못하면 조직은 '배설물'로 가득차게 된다. 많은 조직들이 소화계중 너무 '입'에 편향되어 있다. 사람이나 조직이 '새로운..

포기와 수용의 차이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은 삶을 살다가 '벽'에 부딪힐 때 내 인생은 왜 이러냐라고 묻기보단 그러한 상황을 가져온 "내 인생이 나에게 걸어오는 말에 귀기울이라"고 했다. 인생의 벽앞에서 '포기'보단 '수용'해야 한다. '수용'은 내가 어떤 존재이며, 내 삶에서 내가 선택하지 않고, 어쩔수 없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포기'는 어쩔수 없는 것들에 압도되어 두려워서 도망치는 것이다. '수용'은 개성있는 꽃으로 아름답게 되는 길이지만, '포기'는 그냥 시드는 것이다.

신뢰와 지속가능성은 '편향성' 넘어서기

문과에서 잘하려면 '수학'을 잘 해야하고 이과에서 잘하려면 '언어'를 잘 해야한다. 멋진 내향성격이 되려면 '외향'을 계발해야하고, 성숙한 외향성격을 가꾸려면 '내향'을 계발해야한다. 역량있는 연구자가 되려면 '프리젠테이션' 능력을 갖춰야하고, 설득력있는 강사가 되려면 '텍스트'를 읽고, 분석하고, 가공하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이게 힘든건 자기가 잘 안되는 측면을 불편하고, 귀찮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익숙한 지점의 반대편을 꾸준히 계발해두지 못하면 점차 내 '고유의 능력과 특성'마저 녹슬어가고, 어느 정도 이상의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마치 음양의 이치와 통한다. 건강하려면 양의기운이 많은 사람은 어느 정도의 음기운이 있어야 건강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살리는 산소만 있으면..

일상의 인문교양은 민주주의 토대

인문이란 사람이 그린 무늬다. 사람은 지금까지 수많은 무늬를 남겼다. 어느순간 문자를 만들면서 그 무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공교육이 확대됨에 따라 폭증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언어의 양은 많지만 재료는 빈약함과 마주할 때가 많다. 막걸리집에서 안주로 '전'을 많이 부치긴 하는데, 밀가루에 파나 김치말고는 별다른게 없는 꼴이다. 파전과 김치전만으로도 충분히 안주는 된다. 하지만 좋은 안주라거나 훌륭한 안주라고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어로 '사고'한다. 사고는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하는 바탕이다. 사고의 재료는 '언어'다. 따라서 언어의 양과 질이 사고의 양과 질을 결정한다. 언어와 사고의 연결성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에 대한 통제력' 때문이다. 언어는 사고를 구성하는 바탕이며..

코로나19가 우리에게 하는 말_발전이란 무엇인가?

코로나19가 오개월을 넘어가며 장기체제가 될 전망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인내는 '금방 진정될거야...사스, 메르스때 그랬던 것처럼...'이라는 '희망'을 전제한다. 하지만 그런 희망은 코로나19에겐 가능성이 별로없다는 '사실'앞에서 우리는 새로운 세계관을 필요로 할 지도 모른다. 소위 진보든, 보수든 공통적으로 집착한 사고체계는 '발전'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야 한다는 것,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것, 양적이든, 질적이든 '절대성과'가 넘쳐나도 '상대성과'가 발전하지 않으면 그 상황에 연루된 모든 사람은 곧 죄책감에 시달렸다. 타인이 죄를 묻지않은 상황이라면 스스로에게라도 '상대발전'을 해내지 못한 '자신'에게 죄를 물어온 '발전'이데올로기는 우리시대 최고의 종교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발전'이란..

성공, 실패 VS 신뢰

사람이 아무리 성공이 많아도 신뢰를 잃어버릴수 있고, 사람이 아무리 실패가 많아도 신뢰를 잃어버리지 않을수 있다. 성공과 실패, 신뢰는 다른 차원이다. 신뢰여부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대개 사람을 목적으로 여기느냐 수단으로 여기느냐에 기인한다. 이게 확연히 드러날때가 있는데 그 때는 내적이든, 외적이든 '위기'가 닥칠때다.

'정리정돈의 수고'는 '훌륭한 일'이 지불해야할 비용

'뛰어난 일'과 '고상한 활동'은 반드시 일상의 단순하고,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들의 신세를 지고 있다. '명예로운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걸 뒷받침하는 별로 알아주지 않고, 티나지 않은 '정리정돈의 일'을 하는 누군가의 수고를 반드시 염두하고 시작해야한다. 이것을 염두하지 않고, 티나고, 인정받는 훌륭한 일에 분주하다가 '정리정돈'의 수고에 대한 관심과 겸손의 미룸은 누린 '명예'의 크기만큼의 '수렁'을 파는 일이기도 하다. 명예가 크고, 깊은 만큼 그것이 수렁으로 변하여 빠지게 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엔트로피' 즉 에너지는 늘 평형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법칙이다. 뜨거운 것도, 차가운 것도 가만히 두면 미지근한 즉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훌륭한 일'..